[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바르샤바(Warsaw)8

침묵 속의 맹약

약속을 한 후 여섯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 약속은 허공에 흩어지는 먼지가 된다.
오른손이 4개, 왼손이 2개.
그 앞과 옆에 놓인 잔은 6개, 그 잔에 담긴 것은 붉은 포도주.
피만큼 붉은 포도주를 놓고 그들이 지킨 약속은 영원한 비밀.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은 국경을 넘어 폴란드를 침공했고,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폴란드의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소련이 가세해 이후 6년 동안 두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세웠고, 그 시기의 어느 날 6명이 모여 저항을 약속하지만....
조국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 슬픈 자화상이 바로 이 조각 작품이다.

섬뜩하고, 처절하고, 애달픈 이 작품은, 바르샤바의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박물관의 이름도, 위치도, 작가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하였다는 사실만 떠오른다.
기억하기가 너무 가슴 아파
잊었을 것이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혹은 ‘다시 찾기 위한’ 6명의 맹약을 나타낸 조각 작품. Ⓒ김인철

화려함 속에 깊은 슬픔이 있다

유리로 만든 이 건물은 말하자면, ‘유대인 학살 추모관’이다. 정식 명칭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건물, 기념관, 박물관의 정식 명칭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유대학살추모관은 야드 바셈이라 하는데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단다.
정식 명칭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Yad Vashem Holocaust Museum)’이다.
이외에도 추모관은 여러 곳에 있으며 그중 하나가 바르샤바에 있다.

바깥에 거대한 동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언제나 꽃이 있으며
안에는 여러 전시품이 진열되어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대인들의 교회(?) 모형을 재현한 건축물이다.
굉장히 화려하지만 그 옆에는 죽음의 묘비들이 가득하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들은 희미해지고
그들을 추억하는 사람들도 드물어지고
낯선 이들의 발길만이 분주해질 때
그것은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학살 추모관’. 정식 명칭은 ‘폴란드 유대인 역사박물관( POLIN)’으로 1944년 나치의 유대인 집단 학살에 맞섰던 게토 거주 유대인 봉기 희생자 등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등에 별 표시를 통해 유대인이란 ‘낙인(Labelling)’을 찍어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한 전시물.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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