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장강명의 책 <당선, 합격, 계급>을 읽었다. 그의 다른 소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이다. 이 책은 장강명의 첫 번째 르포르타주다.

왕성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다작의 신, 장강명.

잘 알려져 있듯 장강명 작가는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체에 잠시 몸담았다가 동아일보 기자가 된다. 사회부, 산업부, 정치부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보기 위해 유력 일간지 기자직을 내던진 것. 꽤나 흥미로운 커리어라고 볼 수 있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제도, 각종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도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독히 한국적이다. 지원자는 모두 한 시험장에 들어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친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긴다. 불합격자들이 좌절로 괴로워하는 동안 합격자들은 불합격자들과 멀어진다. 그들은 합격자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패거리주의, 엘리트주의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中

대기업, 언론사 공채 과정을 뚫고 다수의 문학상을 거머쥔, 어찌 보면 이런 시스템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현재의 시험 방식에 강력히 의문을 제기한다.

‘지독히 한국적’이라는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글의 스타일은 작가의 성격이라고 믿는다. 성격이 차가운 사람은 건조한 문장을 쓰게 된다. 세계관이 명료하면 단호한 소설을 쓰게 된다. 극단적인 성향의 작가는 논쟁적인 작품을 내놓는다. 나는 내 성격을 바꾸는 대신 그냥 내 스타일대로 쓰기로 했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中

Ⓒ픽사베이

살인적인 경쟁률이 모든 영역에 보편화된 이 시대에, 시험이 강요하는 획일화된 스타일이 아닌, 어느 정도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당장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의 저항으로, 마지막 자존을 유지하는 방편으로라도 말이다.

“왜 중견·중소기업에 잘 다니고 있는 젊은 회사원이 삼성과 LG 신입 사원 공채에 입사 지원서를 내는가? 내부 사다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中

‘내부 사다리’가 견고히 자리잡지 못하면, 청춘들은 끝없이 유랑하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늘 시험을 쳐왔고, 내일도 또 다른 시험을 치게 될 것이다. 

오, 끈덕진 피평가자의 삶이여.

기자 출신답게 ‘취재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공개채용 방식의 장점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그간 이 제도를 통해서 특별한 배경이 없던 우리 주위의 성실한 학생들이 사회생활의 첫발을 무사히 뗄 수 있었으니. (또 뚜렷한 대안을 내놓기가 너무도 지난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현재와 같이 사람을 뽑는 방식의 지속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 성찰의 몫은 우리가 함께 부담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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