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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하게 말하기’의 어려움[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신세미 | 승인 2019.10.16 09:35

[논객칼럼=신세미] 오래 전 일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교양과목 수업시간에 담당 교수의 말 한마디가 줄곧 마음에 남아 있었다. 정확한 강좌 제목이며 전후 맥락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말만 기억난다. 그 교수는 데이트를 잘 할 수 있는 자질(?) 세 가지 중 하나로 ‘대화를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지목했었다. 세월이 흘러 다른 자질은 잊어버렸지만 ‘대화 능력’이 내 기억 속에 각인돼 있는 걸 보면 당시 내심 다른 두 자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화 능력’의 결핍, 열등감이 컸던 것 같다.

한동안 나 자신의 말하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고심했다. 모임에서 잠시라도 말이 끊기면  부담스럽고, 편한 상대와 함께라도 대화의 공백이 몹시 불편했다. 모임의 구성원으로 말 주변 없는 내가 제 몫을 못하니, 나 때문에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모임에서(둘만 만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나의 대화 무능력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지인들은 말은 잘 안하고 못하지만 그저 열심히 듣기만 하는 내게 “잘 들어줘서 좋다”고 했다. 나로선 다른 사람들 이야기는 화제가 무엇이든 재미나고 귀담아 들을 만해도 내 이야기는 남들에겐 지루할 것 같아 대화에 선뜻 동참하지 못했다. 게다가 말 끼어들기의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하는 탓에 나는 늘 ‘Good Listener’일 수 밖에 없었다. 먹은 음식, 재미있게 본 책 영화 TV드라마, 혹은 일상에서 가족 지인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화제 거리임을 의식하지 못했고 또 대화에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픽사베이

그랬던 내가 변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많아졌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취재원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끄집어내야 했다. 취재원을 만나기 전에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탐색하는 취재 분석의 절차를 거쳐 질문지를 준비하곤 했다. 그런 과정에서 대화가 진행되는 Q&A의 노하우를 조금씩 학습할 수 있었다. 인터뷰나 취재 중에 기사 작성에 필요한 팩트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끊거나 대화의 흐름을 바꿔야 했기에, 그러면서 나의 ‘대화 능력’도 차츰 진화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이 들면서 그 동안 터득한 경험과 지혜를 전해야 한다는,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전과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또 많아졌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이야기나 관심 없는 화제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게 된 나이 듦에 따른 심신의 변화도, 내 말이 많아지는 데 한몫 하는 것 같다.

말을 잘 못해 고민이었던 내가 이즈음 말이 많아질 뿐더러 내 식의 단정적인 의견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이전과 정반대의 상황에서 말하기, 또 대화와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

사실 모임마다 구성원은 여럿이라도 그 중 일부만 대화에 나설 뿐 다수는 제대로 말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 잘 하는 이들이 별의별 시시콜콜한 화제까지 잇따라 이끌다 보면 나머지 사람들은 좀처럼 대화에 끼어들 찬스를 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원치 않는 ‘굿 리스너’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모임이 여러 시간 이어져도 참석자의 개인적 대소사, 일상의 변화라든지 알아야 할 소식까지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고 n명 모임에서 구성원마다 꼭 n분의 1씩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몇만의 마이크 주고받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이전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편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말 많은 사람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며 나 자신도 말을 줄여야겠다고 반성하고 있다.

지난 여름 오랜만의 지인 모임에서 10여명이 차례로 일종의 ‘5분 스피치’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수년 만에 대면한 이도 있어서 각자 자신의 근황을 차례로 간추려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돌아가며 말하기라니, 낯설고 어색해하던 이들이 정작 자기 순서가 되자 너나없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소식을 전했고, 모임 내내 지방방송 없이 집중해서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요즘 사회적으로도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큰 문제와 맞닥트리면서, 일상의 대화에서부터 원활한 소통의 노하우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조선시대 옛 시조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는 쓸데없이 남의 뒷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니, 뒷말이 아니라 일상에서 적절한 말하기에 대해 나부터 궁리해 봐야겠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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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미  dream0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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