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베를린(Berlin)1

벽화가 위엄있는 기차역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7시 50분인데
아직 밖은 환했다. 7월 말이었으니까.
베를린 기차역에 내려 밖으로 나가니
귀에는 귀걸이, 입술에는 쇠구슬을 박은 남자들과
머리를 짧게 깎은 특공대 같은 여자들이
한여름인데도 색 바랜 가죽점퍼를 입고
팔에는 그로테스크한 문신이 가득 하고
기타를 치며, 요란하게 노래를 부르며
괴성을 내지르며...

러시아-벨로루시-폴란드를 거쳐 도착한
베를린 기차역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아니라 유리집.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거리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눈매는 칸트처럼 매섭고
단지 마음에 드는 것은 기차역의 글자 벽화
독일 병정을 닮은....

차가운 바람에
주섬주섬 파카를 꺼내 입으며
아, 지금 햇볕이 엄청 따가울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7월 15일 밤 9시 15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열차가 종착역 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30일 7시 46분. 러시아 하바롭스크-이르쿠츠크-모스크바-폴란드 바르샤바 등을 거쳐 만 15일 만에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서유럽의 중심지에 다다랐다. 1만2,000여 km를 달린 끝에 베를린 역에 내린 일행을 반긴 것은 어스름한 저녁 하늘에 걸린 빨주노초파남보색의 무지개. 긴 장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는 자연의 선물인 듯싶었다. Ⓒ김인철
Ⓒ김인철

여기는 베를린입니다

오래된 건물도 많고
길은 넓고 깨끗하며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고
맥주는 풍부하고
족발(슈바인학센 Schweins Haxen)은 맛있으며
구경거리도 많고
역사 사연도 깊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즐겨라.

무언가를 알려 하지 말고
일부러 깊이 깨달으려 하지 말고
여행에 의미를 두려 하지 말고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그것이 참된 여행
아닌가요?

* 슈바인학센(Schweins Haxen)은 독일식 족발요리이다. 독일의 축제나 맥주집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학센 요리집이 있다.

서울에서도 종종 마주치는 ‘최신식 유리벽 건물’. 러시아나 폴란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고풍스런 기차역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역시나 기차역 밖 오가는 젊은이들의 차림새에서도 자유분방한 자본주의 색채가 한눈에 드러난다. Ⓒ김인철
베를린 기차역의 문자 벽화. 그리고 인기 있는 먹거리의 하나인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학센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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