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청년칼럼=허승화] 설리가, 고인이 되었다. 믿기 어렵지만 우려는 예상보다 더 끔찍한 현재가 되었다. 그녀의 우울증은 너무나 예상 가능했다. 악플이라는 원인과 한 젊은 여성의 죽음이라는 결과 앞에 나는 커다란 무력감을 느낀다.

시선과 평가, 폭력

개인적 친분이나 접점이 없는 인물임에도 그녀의 죽음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이유는, 더 악질인 것이 분명한 사람은 멀쩡히 살고 착하고 여린 사람이 못 견디고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또 다시 재연되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대중은 그녀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너무 모질게 굴었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 인스타 라이브를 켜고 했던 말을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좀 더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나는 이제는 그녀의 말처럼,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의도보다는 더 따뜻한 말을 타인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입을 닫을 때를 알면 좋겠다.

좀 더 따뜻했다면

우리는 타인에 대해 너무 쉽게 평가하는 말을 한다. 나도 설리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SNS로 찾아가 말하거나 기사 댓글을 단 적은 없지만, 그녀의 외모를 두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던 적은 있던 것 같다. 아이돌 그룹 F(x) 중에서도 소위 비주얼 멤버로 통했던 설리는 생전에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으며 살았다. 참으로 가변적인, 외적 조건에 대한 칭찬은 그것을 듣는 사람을 옥죄어 오고는 한다. 사람의 심리 상태와 환경에 따라 칭찬도 평가로만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외모에 대한 가장 큰 존중이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쉬이 망각하는 이 사회에서, 그녀는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그녀의 직업은 연예인이다.

연예인, 더 나아가 여성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일부 한국인의 인식 속 치외 법권에 사는 존재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인격이 지워져 버린 존재로 취급하며 까고 또 깐다. 그들은 일반인과 달리 해이해져서도 자유로워서도 섹스해서도 솔직해서도 안 된다. ‘내 아이돌이 연애는 해도 되지만 들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진다. 마치 배우자의 바람을 눈 감아 주는 상대 배우자 같다.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권리로 한 인간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중. 어느새 익숙해진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픽사베이

익명의 비겁자들

미디어가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악플들이 당사자에게 들리지 않았다. 따라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어도 개인의 정신 건강을 지키고 살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게 그나마 가능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타인의 면전에다 대고 직접 욕을 하는 타인은 별로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얼굴이 사라져버린 악플러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웹의 공간에 해서는 안 될 말을 남긴다. 당사자가 직접 운영하는 SNS에 몰려가 못 살게 굴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게 싫으면 계정을 폭파해버리거나 SNS를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관심을 먹고 살아야 하고 SNS는 이미 일반 청년들에게도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SNS라는 애증의 공간은 아이돌들이 반드시 서야하는 무대와도 비슷하다. 그러므로 가치관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는 10대 때부터 미디어의 악영향을 견디며 자라온 전, 현직 아이돌들은 더러는 체념하며 더러는 싸워가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안부를 챙겨야 했다. 그 가운데 설리는 늘 용기 있게 맞서는 쪽이었다. 하지만 세인들은 그녀의 당당함을 ‘예쁘게’ 봐주지 않았다.

진짜 용기

세상에는 크게 봐서 두 가지 종류의 용기가 있다. 죽을 용기와 살 용기다. 우리 삶은 거의 그 사이에 있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살 용기는 없어서 죽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 흔들리며, 각자의 용기를 갖고 산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슬퍼하는 자들을 향해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자들이야말로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없는 이미 죽은 자들이라 여긴다. 사실상 좀비나 다름 없는 그들의 손끝에 상처 입는 용자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늘 용기 있던 그녀가 부디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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