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청년칼럼=지은성] 8월은 인내의 계절이다. 강렬한 볕이 온몸을 태우고, 무더위는 숨을 조인다. 그저 위안이라면 에어컨 바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뿐. 그래도 누군가는 이 잔인한 계절에 성취를 맛본다. 코스모스 졸업, 그렇다. 8월은 유이(唯二)한 졸업의 계절인 것이다. ‘코스모스’라는 별칭은 같은 시기를 대표하는 꽃 이름에서 따왔다. 코스모스는 6~10월이면 만발한다. 애써 돌보는 사람 없이도 코스모스는 때를 맞춰 봉우리를 피운다. 장소의 구애도 없다. 이 무렵이면 산과 들은 온통 코스모스 천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코스모스를 보며 계절의 도래를 실감하는지도 모르겠다. 달력 속 날짜나 절기 따위는 다 담지 못하는 계절의 미묘한 형상과 냄새가 꽃 한 송이에 다 담겨 있다.

코스모스 졸업이 사실 흔한 편은 아니다. 3월에 입학해 학사일정을 그대로 따르면 한겨울(1~2월)에 졸업하는 게 맞다. 그래서 졸업생도 겨울이 여름보다 많다. 10명 중 7명이 겨울 졸업이라면 코스모스 졸업은 2~3명에 불과하다. 확실히 졸업식에 가보면 여름이 겨울의 그것보다 한산하고 조용하다. 2~3할의 예외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부분이 휴학 때문이지만 그 사유는 병역이나 취업, 시험, 여행 등으로 제각각이다. 휴학 말고도 조기 졸업도 이유 중 하나다. 최근에는 원인으로 졸업 유예가 늘고 있다. 졸업 유예는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부쩍 늘었다. 대학의 정규교육과정은 모두 마쳤지만, 졸업을 미루는 것을 말한다. 대학 5년이란 신조어도 여기서 나왔다.

Ⓒ픽사베이

선배 K도 이번 여름 졸업했다. 졸업까지 꼬박 14년이 걸렸다. 주변에서 초등학교를 2번 다니느라 고생했다는 농담 섞인 축하(?)가 뒤따른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보다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자신의 목표를 온전히 성취하면서 마친 대학 생활이니까. 졸업식에서 그는 평소보다 유난히 빛났다. 정말 그의 졸업이 이름하듯 한 송이 꽃 같았다. 고행을 완수한 구도자는 다 저런 모습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대비 효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나는 코스모스 졸업에서 묘한 씁쓸함을 느낀다. 모든 돌발변수가 여름 졸업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여름 졸업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계획이 있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막연한 구상이나 예감 정도는 누구나 하고 산다. 코스모스 졸업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으리라. 내가 그랬고, K 선배도 그랬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들의 계획에 코스모스 졸업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졸업생들의 계획에도 코스모스 졸업은 상상하기 어렵다. 보편과 특수가 있다면 인간은 대개 자신을 보편의 편에 두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여름 졸업은 처음 계획과는 최소 한발씩 벗어난 돌발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코스모스라는 이름은 상징적이다. 코스모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우주, 세계’인데, 신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주는 복잡계(complex system)의 공간이다. 계층적이고 단일한 인과법칙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학과 물질이 충돌하는 가운데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여름 졸업과 우주는 그래서 닮았다. 모두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의 소산인 것이다. 인간의 계획이 단순계(simple system)라면 우리의 현실은 복잡계다. 우리네 계획은 모든 변수를 고려할 수 있고, 현실은 그 변수와 계획이 충돌하며 만들어진다. 스무 살 K 선배가 가졌던 꿈이 단순계라면 14년 후 그의 코스모스 졸업이 복잡계인 것처럼. 이때 예상치 못한 변수라고 한다면 취업난과 그로 인한 잦은 휴학과 졸업 유예 정도가 된다.

언뜻 인간이 나약하다고 느껴지는 이야기다. 아무리 계획해봐야 현실은 통제할 수 없다니. 하지만 인간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 험난한 복잡계를 인내하고 삶을 완주한 게 다름 아닌 인간이니까. 같은 거리라도 정돈된 포장도로를 뛰는 것과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가 취미라면 후자는 최소 훈련이다. 그래서 코스모스 졸업은 씁쓸하지만 동시에 위대하다. 험난한 시대를 만난 젊음의 노고가 안쓰럽지만 이를 정면 돌파한 이들의 의지에는 경외감이 생긴다. 여름을 인내하고 계절의 상징이 되는 코스모스처럼 이 무렵 졸업생들은 모두가 이 시대의 코스모스인 것이다. 만발한 코스모스를 보며 계절과 시대를 동시에 느낀다. 우리는 지금 여름과 가을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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