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국민이 요구합니다.
청년들이 분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과 청년은 누구일까. 사전적 정의를 따른다면 나는 두 집단 모두 포함된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국민인 동시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목에 뭐라도 걸린 듯 찜찜함이 남는다. 국민, 청년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호출하는 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조국 전 장관의 사퇴가 국민의 요구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동의해야 한다는, 혹은 국민의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다. 이 문장에 따르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셈이 된다.

물론 국민이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꺼내든 개념이 ‘청년’이다. 같은 예를 다시 들어보자. 조국 전 장관 임명에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조국 전 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시위에 참석한 청년들이 진짜 청년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침묵하는 청년들은 진정한 청년이 아니다. 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고려대 세종캠퍼스 학생의 집회 참석에 관한 논란이나 보수 유튜버, 정치인들의 참석을 두고 대학생 집회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집회가 정치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건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가 아닌, 청년에 대한 인식 그 자체이다. 분명 문제가 있다. ‘진짜 청년’, ‘진정한 청년’ 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청년들을 정치와 분리된 존재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마치 청년들은 정치와 전혀 무관한 존재이고, 정치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진짜 청년’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심지어 정치적 행위가 특정 정당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의심한다. 게다가 여기서 집단으로 호출되는 청년은 실체가 없다. 청년, 청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청년은 대체 누구인가?

청년이라 하더라도 개별 이슈에 따라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조국 전 장관을 한 번 더 예로 들어보자. 누군가는 사퇴에 적극 동의할 것이다. 누군가는 사퇴에 동의하지만 시위에 참석하는 것은 원치 않을 수 있다. 검찰 개혁을 이유로 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청년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청년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청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본인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청년이라는 집단을 호명 혹은 호출한다. 그리고 그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멋대로 청년에서 배제해버린다. 청년들은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멋대로 호출되고, 청년이 맞다 아니다 감별까지 당한다. 불쾌할 수밖에 없다.

청년을 부르짖는 건 청년을 대변하기 위함일까.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작품 활동을 해온 장강명 작가도 본인의 소설 '표백'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이 다루는 가능성은 20대를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사실에 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도 일종의 착취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처럼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심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표백'은 청년들의 집단적, 저항적 자살을 통해 사회에 균열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청년들은 또 다시 사회 변화를 위해 호명되고 도구화될 위험성 앞에 놓인다. 청년들에겐 기존의 시스템과 지배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표백 세대’의 개념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장강명의 소설은 청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청년들의 삶을 현실성있게 재현하여 청년문제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확장하고 함께 고민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청년을 이해관계에 맞춰 하나의 집단으로 개념화하려는 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청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시도조차 않는 건 괘씸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존재를 이용하기 전에 최소한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이라도 해보기 바란다. 그게 청년을 호출하기에 앞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세다. [청년칼럼=이광호]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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