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지난 10월 22일 나루히토(德仁) 레이와(令和) 천황이 즉위했다. 상왕인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지난 4월 30일 생전 퇴위함에 따라 5월 1일 왕위를 물려받았고 이날 황실 궁전에서 열린 즉위식 즉 '소쿠이레이 세이덴노기(即位禮 正殿の儀)‘를 통해 대내외에 공식 선포한 것이다.

그는 이날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예지(叡智)와 해이해지지 않은 노력에 의해 일본이 한층 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헌법수호나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에의 기여 의지는 천황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무를 말한 것이긴 하나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시점이라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한일 간의 갈등이 고조돼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를 말한 것에도 의미는 있겠다.

Ⓒ픽사베이

나루히토 천황의 이같은 발언은 아키히토 상왕의 노선을 충실하게 이어받은 것이다. 아베 정권의 지속적인 개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키히도 천황은 헌법수호 의지를 밝혀왔고,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때만 되면 참배하는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자신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는 일본 황실에 한반도 도래인(渡來人)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최초로 시인한 천황이기도 했다. 1990년 즉위 이후 역대 한국 대통령들과 만날 때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표시했다. 2005년 사이판을 방문해서는 그곳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탑에 헌화하기도 했다. 한일 우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사죄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는 두 차례나 한국 방문을 시도했으나 불발되기도 했다. 황태자 시절인 1986년에는 부인의 건강 때문에, 천황 시절인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때는 두 나라 내부에서 일었던 반대 여론 때문이었다.

나루히토 천황은 59세로 젊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고, 등산 테니스 등 취미도 다양하다. 특히 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 솜씨는 전문가 수준으로 2004년 ‘한일우호특별음악회’에서 한국의 지휘자 정명훈 씨와 협연을 갖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한반도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하면 일본 황실의 조상의 혈통을 찾아 공주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적이 있을 만큼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나루히토 천황은 재위기간이 이제 시작된 상태이므로 언젠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천황의 방한이 여의치 않으면 재위 기간 중 한국을 세심하게 배려했던 아키히토 상왕만이라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한을 학수고대하는 마당에 일본 천황이나 은퇴한 천황을 초청하지 못할 일도 없다. 천황이 한국에 와서 무령왕릉을 찾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잡는 것만큼 확실한 우호회복과 사죄의 장면은 없다.

인적·물적 교류가 개방된 나라 사이에서 교류의 금기를 설정한 아베정권의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는 시대착오적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일본 천황에게 금기의 땅으로 남아있는 것도 비정상이다.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는 일본 천황의 방한이 이뤄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금의 한일관계는 일본의 대한 경제보복과 한국의 대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 파기이후 최악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 특사로 일본에 갔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를 통해 아베 총리에게 친서를 전했고, 이와는 별도의 채널을 통해 나루히토 천황에게도 친서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의 친서 외교에 아베 정부가 적극 호응해 한일 관계 회복의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재인-아베 정상회담은 물론 나루히토 천황 또는 아키히토 상왕의 방한도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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