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오피니언타임스=앤디] 두물머리를 처음 가본 건 6년 전 겨울이었다. (기억이 정확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이 장소가 어떤 드라마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연차를 낸 어느 평일에 홀로 차를 끌고 이곳을 방문했다. 잔뜩 기대를 안고 도착했건만 두물머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휑하고 휑하였다. 내가 맞게 잘 찾아온 건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 갔던 그때의 날씨도 제법 잘 기억하고 있는 편인데, 그 날은 계절도 겨울인데 비까지 내려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첫 방문이 내게는 퍽 인상적으로 남은 건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너무 멀리는 못 갈 때 두물머리를 찾곤 했다.

저번 주말, 도서관에서 들었던 강연의 마지막 일정이 탐방이어서 경기도 남양주를 가게 되었다. 두물머리는 사실 탐방의 메인 코스는 아니었다. 탐방지에서 차로 10분~15분 떨어진 곳이라 탐방을 기획하신 분이 센스있게 끼워 넣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방 참여자들은 두물머리에서 각자 흩어져 점심을 먹고 산책까지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배가 딱히 고프지 않아서 이곳에 올 때마다 가는 카페에 앉아 통유리 창밖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멍을 때리었다.

수만 가지의 실익 없는 생각들로 피식거리다가 불현듯 아침에 봤던 고속도로 투명 방음벽이 떠올랐다. 어디를 갈 때마다 분명 꽤 많이 지나갔던 도로였는데, 주로 운전하면서 지나쳤던지라 인지하지 못한 방음벽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유독 주목했던 건 투명 방음벽 위에 군데군데 붙어 있었던 독수리 사진들이었다. 처음에는 외관을 해치는 저 조악한 독수리 사진은 뭐지? 했다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머리를 굴려보았다.

Ⓒ픽사베이

혹시 투명 방음벽을 벽인 줄 모르는 새들이 날아와서 그 벽에 머리를 박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그런 거 아닐까 추측만 하다가 멍 때림끝에 다시 생각이나 카페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그것은 예상대로 야생조류의 충돌사고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버드 세이버’라는 것이었다. 관련 글을 몇 개 읽어 보니 투명 방음벽이 벽인 줄 모르고 날아와서 부딪혀 죽는 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 좋아하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인간은 무엇을 보든 인생과 연결시키려 한다는 것’이란 말이다.

투명 방음벽, 벽인 줄 모르고 날아와서 부딪혀 죽는 새, 그래서 붙여진 버드 세이버.

이 일련의 상황을 알고 나자 그 투명 방음벽이 이 세상 같고 머리를 박는 새가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총운 중 상당 부분이 학창 시절에 몰빵 된건지는 몰라도) 학생일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벽들을 세상에 나오고 나서 많이 실감했기 때문이다. 벽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특히 여자라서, 여자만이 느끼는 어떤 벽의 존재는 일백 프로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이었다.

일단 회사에서 직원을 5명 뽑는다면 남자가 3명이고 여자가 2명이다. 직원을 3명 뽑는다면 남자가 2명이고 여자가 1명이다. 직원을 1명 뽑는다면 그 한 명은 남자다. 적어도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이 불문율이 깨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입사 후 몇 년이 지나고, 이 회사에 여자 책임자가 처음 등장하게 된 역사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한 일도 있었다. 당시 있었던 시 감사에서 시의원(여성) 한 명이 어떻게 된 게 이 회사는 책임자 중에 여자 직원 한 명이 없냐고 지적하는 바람에 여자 책임자가 탄생했다는 기막힌 설화였다. 그때만 해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역사도 짧은 회사가 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있었네 이렇게 넘겼었는데, 10년을 다녀보니 여기 호랑이는 담배를 꽤 오래오래 피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하나 혹은 어쩜 그 이상의) 벽과 마주한다. 대놓고 벽인 것들도 있지만, (세상이 예전에 비해 오픈되고 세련되지는 바람에) 본질은 벽이면서 겉으로는 투명한 체하는 벽들도 많다. 탐방을 떠나면서 우연히 투명 방음벽과 버드 세이버를 본 바람에 나의 탐방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풍성해지었다.

그나저나 새들이 '투명한 벽'을 '피해가'라고 붙여놓는다는 버드 세이버는 과연 진정한 의미로 버드를 세이브하는 건지 그건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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