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청년칼럼=이하연]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가 생겼다. 아빠는 병상에서 내게 중고차를 덥석 사주더니 며칠 후 돌아가셨다. 누군가한텐 자동차가 시야와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가 된다던데, 나에겐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면허가 없으니까. 내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므로 어쩌면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히려 짐만 됐던 것이 사실이다.

직장인이 연차를 마구 쓰면서까지 운전면허를 따기란 쉽지 않다. 연차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자동차를 끌고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다. 지하철을 타도 회사까지 30~40분이면 충분한 데다가 내 하루의 낙은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것이므로. 그럼에도 내가 운전면허에 도전하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준 마지막 선물이어서? 이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홧김에’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아 보인다.

Ⓒ픽사베이

고백하건대 나는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만 돌아봐도 선생님과 집안 어른들의 말씀에 “예!”라고 대답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학생답게 단정하게 입지 않았고 학생답게 공부만 하지도 않았다―도대체 무엇이 학생다운 건지, 당연히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대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졸업 학점도 형편없었고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었다. 내 갈 길만 갔더랬지. 그것도 좀 지나치게. 다행히 남한테 피해는 안 줬다. 다른 친구들 공부 못하게 분위기를 흐린 적도 없거니와 무임승차 따위도 한 적이 없다.

글을 쓰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각종 문화예술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기본기도 없는 주제에 참 내 멋대로 살고 있구나. 어쩌면 경쟁을 두려워하는 내가 극심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함을 극도로 거부했다. 다들 학업에 열중할 때 여행을 떠났고, 취업을 준비할 때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물론 이런 삶의 방식을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청개구리식 태도가 배움에서도 드러날 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뭔가를 처음 배우는 학습자의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경청이다. 기본기를 습득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때 가서 주관을 넣어도 늦지 않는다. 오히려 탄탄한 이론과 개성이 합쳐진다면 배움은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 반면 자만은 경계해야 한다. 날개를 잡는 쇠사슬 같은 거라고나 할까. 홧김에 신청한 면허 교육이었지만 어떤 생각 같은 게 꿈틀거렸다.

면허가 세상의 규칙과 약속을 습득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 청개구리식 삶의 방식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적어도 첫 배움에 있어서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른이가 되고 싶다. 온 정성을 들여 배움에 임하고, 최선을 다해 나만의 노하우를 생성하는. 청개구리야 나중에 튀어나와도 괜찮으니 지금은 가만히 있어주렴.

물론 그깟 운전면허가 뭐라고,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운전자들을 존경한다. 나는 어제 도로주행에서 실격했다…. 

이하연

얼토당토하면서 의미가 담긴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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