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청년칼럼=방제일] 21세기 대중문화의 단상은 아이돌 문화와 돌아이 문화로 대변된다. 먼저 1990년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아이돌은 H.O.T, 젝스키스, 핑클, S.E.S를 시작으로 소녀시대, 동방신기를 넘어 블랙핑크, 방탄소년단까지 대중문화와 유리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가 아이돌의 홍수라면 서브컬처 쪽은 '대 돌아이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아프리카를 필두로 유튜브, 트위치 등 스트리밍 서비스 기반 플랫폼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을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오늘날, 유명해지고 싶다면 이 두 가지 콘셉트 중에 한 가지를 명확히 선택해야 한다. 전자가 외모적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후자는 인간적 의지를 바탕으로 수치를 모르는 철면으로 만들어진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모두가 그렇듯 이들은 긍정과 부정 속에서 어떻게든 대중들의 눈과 귀, 입을 사로잡으려 노력한다. 개 중에는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는 아이돌이 있는 반면, 사회 친화적 돌아이가 있다.

이런 대중문화의 영역을 문단으로 끌고 들어와 말해보자면 현재 한국 현대문학이 이렇게까지 사양화된 이유 중 하나는 문단이 이 대중문화의 변화를 선뜻 수용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참신하고 기발한 글들을 기다린다는 수많은 신춘문예에는 참신하지도, 신묘하지도 않은 이야기만 가득하다. 어디선가 읽어봄직하고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그저 그런 이야기만 있다. 표현이 쌈박하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기성 문단에 있는 이들이 보자면 웹소설이 흥하는 현상은 기이해 보일 것이다. 특히 웹소설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들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웹소설은 소설에 대해 ‘1도’ 모르는 돌아이가 쓴 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웹소설이나 라이트노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웹소설은 아이돌 문화와 비슷한 경향성을 보인다.

Ⓒ픽사베이

이런 문학의 괴리는 초창기 대중가요계의 거성들이 가졌던 회의와 맞닿아 있다.

가창력을 바탕으로 노래를 잘해야 가수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노래는 못하고 비주얼만 그럴듯한 아이돌 문화가 흥하는 것은 이상 현상이었다. 기존 원로 가수들은 아이돌에게 박탈감을 느꼈다. 그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서브가 되고 아이돌이 메인으로 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한때 주류라고 믿었던 이들이 이제는 마이너가 된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는 주류적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언젠가 듣도 보도 못한 잡글을 쓰는 문학 돌아이에게 문단 아이돌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대중가요, 대중문화계가 겪었던 충격파와 혼란을 그들도 겪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만화 쪽은 웹툰이 흥하면서 이 현상이 빠르게 일어났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역으로 웹툰 쪽으로 넘어 왔다. 그들이 바로 허영만, 윤태호, 한승원, 천계영, 박성우 등 1990년대 한국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문학 쪽에서 받아들인 이는 내가 아는 한 현재까지는 <고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천명관이다. 천명관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비교적 가벼운 형태의 웹소설로 연재했다. 출간도 됐다. 수익도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과거 자신의 이름값에 기대어 출판을 하고 있는 이들은 얼어붙은 출판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상한 표현으로 고전이지, 이제는 그들이 '책'이 다시 출판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얼마 전 들은 풍문에 따르면 한 원로 소설가가 원고를 탈고했다며 잘 알던 출판사 대표한테 연락하니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는 후담이 있다.

늙어버린 아이돌은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다. 가장 빠르고 확산력이 큰 대중문화의 발 빠른 변화를 보면 체감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가장 빠르게 문화를 수용해야 하지만 가장 더디게 대중을 받아들이고 있는 문단은 과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

처음 박민규가 문단에 나왔을 때, 그는 문학계의 이단아이자 돌아이로서의 자질이 풍부해 보였다. 최근 나오는 작품들도 나쁘지는 않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만큼의 충격은 없다. 문체와 문학성은 높아졌지만 특유의 풍자와 해학은 떨어졌다. 아이돌이 나이를 먹듯, 돌아이도 나이를 먹는 것이다. 그렇게 도태된다는 뜻이다.

이런 가시밭길이 깔려있는 문단의 현실을 알고도 매년 겨울이 올 때쯤이면 '열병'을 앓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공식적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문학청년, 이른바 '문청'들이다. 그들은 그 알량한 작가 자격증 하나를 얻기 위해 매일 모니터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피를 토하며 자신의 글을 완성시킨다. 괜찮은지, 당선은 될 수 있는지 확신은 없다. 그냥 쓰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 생에서 선택한 '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각 신문사에 아직까지는 내 글을 보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자신 없었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심사위원들이 판단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귀신에 홀리듯 매년 1월 1일이 되면 각 신문사의 모든 신춘문예들을 긁어모아서 읽는다. 그 글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안도했다. 혹은 분노했다.

안도했다는 것은 그들의 소설이 썩 빼어나 보이지 않는다는 자신감, 혹은 스스로에 대한 오만함이다. 분노는 나 자신에 향한 것이다. 그저 불완전할지라도 완결한 형태의 습작을 나는 왜 용기도 없고, 객기도 없어서 제출도 못하는가라는 자책감 혹은 무력감.

올해도 '문청'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춥고 혹독한 계절이 오고 있다. 누군가는 벌써부터 완성한 작품들을 꼼꼼히 뜯어보고 퇴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불면의 밤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또 다른 누구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헛소리를 끄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이미 포기해버리고 내년을 기약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마음이 어려워진다. 내년에는 반드시 좋은 작품으로 꼭 내 이름으로 된 소설을 세상에 선보이리라. 다짐하고 다짐한다. 그렇게 미루고 미룬다. 대체 그 내년은 언제 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그 내년이 오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아이돌이 되든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돌아이가 되든가다.

 방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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