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그럼, 대학 나와서는 쭉 논 거네?”

모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매장 알바 면접이었다. 가자미 눈을 뜬 채 내 이력서를 노려보던 사장은 분명 그렇게 물었다. ‘놀다’라는 단어의 실질적 의미를 나는 잠시 숙고했다. 내가 아무리 뽀로로마냥 노는 게 제일 좋은 인간이긴 해도 만난지 30분 된 초면의 사장이 그걸 알리 만무했다. 여기다 ‘~거네?’라는 반말까지 조합하면 그가 사용한 ‘놀다’의 의미는 명확했다. 나는 쓰게 미소 지었다. 사장님은 면접에서 ‘탈락’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와의 첫 접촉은 쎄한 구석이 있었다. 밤 10시 30분, 그는 ‘내일 3~4시 사이에 면접 보러오세요’라는 짧은 문자를 내게 던졌다. 면접까지 17시간 정도가 남은 셈이었다. 내게 선약이 있을 가능성 같은 건 그에겐 고려사항이 아닌 듯 보였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나는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언짢음을 짓누른 채 예의 바른 경어체 문장으로 답장을 수놓았다. 그래, 문자만 무뚝뚝한 사람도 있으니까. 예감을 바람으로 치환하기 위하여 나는 무진 애를 써야했다.

다음 날 마주한 사장은 위 아래로 나를 훑더니 이력서를 요구했다. 들은 바가 없어 뽑아오지 못했습니다~ 답했으나 그는 전혀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면접에 이력서 뽑아오는 건 상식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이러면 내가 휴대폰 화면으로 봐야되지 않냐”까지의 질타가 수분간 이어졌다.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정답이었던 걸까. 그는 그제야 입을 다문 채 지원자 목록에서 내 이력서를 찾기 시작했다. 수십명이나 지원을 했다는 우쭐거림과 여자는 못 믿겠어서 뽑지 않았다는 등의 중얼거림이 간간이 들렸다. ‘마라톤이 취미기에 고객들에게 더 좋은 상담을 해 줄 수 있다’는 내 이력서 문구에 대한 -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슬림하지 않냐는 - 비꼼도 ‘자본주의 미소’로 무사히 받아넘겼다.

Ⓒ픽사베이

“대학 졸업하고는 그럼 쭉 논거네?”

놀았다, 라... 확실히 이력서상 내 마지막 경제 활동은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럼 그동안 무대 설치 및 철거, 행사 진행, 물류센터 등의 단기 아르바이트와 6개월간의 신문사 인턴 기자 경력을 사장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걸까. 저 금수저 아니고요, 저도 먹고 살려고 바득바득 일해왔습니다, 강변해야 할까. 고민에 빠진 와중에 사장은 재차 물었다. 성가셔진 나는 신문사에 잠깐 있었다고 짤막히 답했다.

“그걸 왜 이력서에 안 썼어! 그래, 어디 신문사였는데요?”

이럴까봐 안 썼다는 말을 눌러 담으며 나는 간략히 설명했다. 00신문 디지털 뉴스부의 인턴 기자 생활을 6개월 간 했다고. 돌아온 그의 반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것도 다 기자면 대학 박사들은 전부 다 석학이고 석좌 교수고 그러게요? 참나, 아니 안 그러냐고~”.

내가 할 말을 잃은 사이 그는 나를 카운터로 데리고 가 근무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근무표에 태연히 내 이름을 적어넣은 그는 A/S 장부를 펼치며 장부 기입법 강의를 시작할 참이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 알아보시죠”

뜻밖의 탈락 소식에 그는 잠깐이지만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가방을 챙겨 면접장 겸 매장을 빠져나왔다.

면접[명사] : 서로 직접 만나봄
- 고려대한국어사전

몇 년 전 한국 취업 시장에는 이른바 ‘압박 면접’이 유행한 바 있다. 공격적 질문과 비꼼 등을 통해 수험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이때의 반응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면접 방식은 수험자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몇몇 면접자들에게 편리한 핑곗거리가 돼주었다. 해서 한 수험생은 면접장을 박차고 나오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여기선 수험자지만,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당신들의 잠재 고객입니다”.

면접은 구직자와 면접관이 ‘서로’ 만나보는 자리다. 그리고 당연히 평가 역시 ‘서로’를 향해 이뤄진다. 고용자가 같이 일하고 싶은 직원을 찾듯, 구직자도 고용주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 면접 스트레스도 못 견뎌서 뭘 하겠냐는 주장은 얄팍하다. 훌륭하신 면접자들이 서류 합격시킨 구직자들은 당연하게도, 압박 면접과 인격적 모욕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닌 까닭이다. 간절한 구직자들을 재료삼아 갑으로서의 권위를 만끽하는 고용주는 열정적이고 성실하되, 바보는 아닌 구직자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사장님은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P.S : 사장님, 이틀 후 저는 같은 브랜드의 다른 매장에 채용돼 일하게 됐습니다. 물론 면접도 봤습니다. 열심히 해보려고요. 사장님도 번창하세요. [청년칼럼=시언]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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