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논객칼럼=황인선] 내가 서울혁신센터장으로 부임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여러 명이 번갈아 찾아왔다. 직원도 있었고 부서장도 있었다. 그들은 상사의 부당지시, 협박 언사, 직원의 상사 모욕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해결과 방지를 호소했다. 그들의 이력을 보니 '파크 살이' 이전에 공무원을 했던 분, 군 장교를 지냈던 분들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어이없음, 답답함, 대상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을 담고 있었는데 이들은 억울하다지만 사실 증명하고 처벌하기가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성향, 주관성, 증거 부재 등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솔로몬이 갑자기 위대해 보였는데, 그들의 괴롭힘 주장 뒤에 혹시 다음의 욕구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나 공무원 출신이야. 규정을 중시한다고. 그런 나를 인정해줘. 썅.’
‘나 장교출신이야. 군은 명령을 따라야 돼. 그런 나를 인정하라고. 썅.’
‘나 부서장이야. 틀리든 맞든 일단 내 권위를 인정하라고. 썅.’

Ⓒ픽사베이

인정문화를 훈련해야

그러던 중 최근에 서울시에서 기관장들 대상의 직장 내 괴롭힘 주제교육을 받았다. 사례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는데 내가 30년 직장생활 중 들었던 왕따, 부당 평가, 폭언, 뒷담화와 공개적 모욕... 등도 상당부분 있었다. 과거에 이런 것들은 ‘꼬리 내리기/무릎 꿇기/줄서기/필사적 승진’ 등 나름 해법으로 넘어가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2019년 7월 관련법 발효 이후 이제 그것들은 모두 위험하단다. 유럽은 모르겠는데 아시아에서 이런 법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다. 이렇게 한국은 그동안 가정과 함께 괴롭힘 사각지대 중 하나였던 직장 내 인권 회복을 향한 전진을 하고 있다. 교육을 받으면서 내내 생각을 했다.

‘교육은 욕구에 기반 해야 효과적인데 그 회복의 과정을 설명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는 과연 뭘까? 인정에 대한 욕구는 아닐까. 인간주의 심리학자 A. 마슬로우가 말했던 욕구 5단계 중에 네 번째 ‘인정/존중(need for esteem)에 대한 욕구’.

그럼 이 욕구를 담는 그릇은 무엇이어야 할까? 2016년 촛불집회부터 불거진 미투, 갑질 고발운동 이후 한국사회는 세대, 빈부, 학벌, 소수자, 다문화, 가정/데이트, 정보, 생태, 동물 생명권... 등 온갖 분야에서 갈등이 폭출하고 있다. ‘차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차별은 안 된다.’는 선언도 넘쳐난다. 그런데 그것들은 기존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있었는데 이제야 갈등/괴롭힘으로 정의될 뿐이다. 이에 대해 흔히 교육과 감시, 역할 전도 실험과 처벌 등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물론 다 유효한 방법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해법의 초점을 ‘인정 문화 형성’에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린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체란 말이야/우리가 민주화를 이룬 386이라고/우리 청년들 미래는요?/ 트랜스젠더가 어때서... 너, 나 좀 인정해줘 썅.’ 이런 인정욕구들을 수용하는 그릇으로서의 문화. 서울혁신파크는 이런 인정문화를 실험 중인데 예를 들어 여기는 잡초를 베려고 해도 쉽지 않다. “세상에 잡초는 없다.”를 주장하는 생태운동가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저탄소 운동을 위해 주차 요금 인상, 정기 주차 축소, 5부제를 하려해도 일부는 그것을 파쇼적(?)이라고 거부할 것이다. 그게 서울혁신파크의 인정 문화다. 그 문화가 바로 혁신이다.

앞으로 갈등이 점점 많아질 한국에서, 사회적 생명들은 인정 문화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미세먼지 지수뿐만 아니라 ‘인정 문화 지수(esteem index)’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산상수훈 황금률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해야 하지 않을까?

 황인선

현 서울혁신센터장. 경희 사이버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KT&G 미래팀장, 제일기획 AE 등 역임. 컨셉추얼리스트로서 마케팅, 스토리텔링, 도시 브랜딩 수행. 저서 <꿈꾸는 독종>, <동심경영>,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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