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의 프리라이팅]

[청년칼럼=앤디] 수능에 관한 기사가 등장하는 걸 보고 11월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헤아려보니 내가 수능시험을 본 게 벌써 19년 전의 일이었다.

2000년 11월 15일은 상당 부분 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날 아침의 긴장된 마음, 그 날의 온도, 낯설었던 고사장, 유독 구두 소리가 심했던 감독관, 소화가 안 돼서 엄마가 도시락으로 싸주신 닭죽 등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을 의식하며, 모범생으로 살았던 그때.

수능은 내게 있어 12년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평가받는 어마 무시한 날이었다. 10대인 나에게 대학은 주요한 화두였고, 어떻게 해서든 목표한 대학을 가는 것으로 나의 20대를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공부가 마침 학생의 본분이라기에 공부를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맞이한 20대는 바라던 것을 늘 얻지 못해서 바람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로 시작된 30대도 어느덧 반이 흘러 이제 40대를 준비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픽사베이

이쯤 되니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어떤 시기'만 지나면 끝날 줄 알았던 고민들은 다른 차원의 결을 지닌 채 더 큰 크기로 주욱 이어져온다는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 20년 전 (‘대학’만 고민하느라) 하지 못했던 적성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새삼 지금 하고 있다. 올해는 연초부터 이 고민 하나만을 보고 달려와서일까, 며칠 전 신문에서 수능이란 단어를 보자마자 시 제목이기도 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모두 아는 19년 전의 나라면 과연 똑같은 걸 고민하고, 똑같은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무 빠르고 단호하게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해 만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텐데 뭔가(?) 알고 있는 지금의 나는 너무 매정하게 (성적에 연연했던)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며 부정하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때는 그때라서 모른 게 당연하고, 지금은 지금이라서 아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재빨리 후회를 접는다. 19년 전 대학 수능 시험 날, 행여 실수라도 할까 봐 손을 오들오들 떨며 OMR카드에 정답을 마킹했던 그때의 나라서 지금 알게 된 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한다.

지금은 10년 차 직장인으로 출근시간이 한 시간 늦춰진다는 회사 공지를 통해서나 수능날인 걸 알아채고 있다. 그래서 수능 즈음 갑자기 날이 추워지는 미스터리가 요즘도 반복되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날씨까지 거들지 않아도 그날만큼은 모든 수험생들이 몸과 마음이 떨릴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부디 이번 수능 날 날씨가 꼭 포근했으면 좋겠다.

‘지금 알고 있는 건’ 실수 없이 모두 정답을 적어내길.
2020년도 수학능력시험을 치를 모든 수험생들의 건투를 빈다. 

앤디

글을 쓰는 순간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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