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남아공의 2019 럭비월드컵 우승팀 주장 시야 콜리시의 외침

[논객칼럼=이계홍] 지난 2일 스포츠 TV 전문 채널을 통해 2019 럭비 월드컵 결승전을 보았다.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결승전에서 남아프리카연방공화국(남아공)이 영국팀과 초반 대등하게 부딪치더니 경기 후반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32 대 12라는 큰 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1995년 첫 우승, 2007년 두 번째 우승, 그리고 2019년인 올해 세 번째 우승. 두 번째, 세 번째 모두 공교롭게도 12년만의 우승이다. 럭비 월드컵은 우리에겐 낯설지만 럭비의 발상지인 영국 등 영연방과 유럽 국가에서는 FIFA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의 뒤를 이어 인기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2015년 잉글랜드 대회는 247만 명의 관중과 42억 명이 TV를 시청한 기록을 갖고 있다.

Ⓒ픽사베이

럭비 경기는 1823년 영국의 명문 럭비고등학교에서 축구 경기 중 윌리엄 웹 엘리스라는 선수가 공을 안은 채 상대의 골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 효시다. 반칙이었지만 공을 쥐고 달리는 것이 흥미로워서 발전시킨 것이 학교 이름을 딴 럭비 경기가 된 것이다. 럭비 경기는 영국이 식민지 점령지에서 도전과 개척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야성적 남성 스포츠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럭비 월드컵은 탄생한 지 160여년이 지난 1987년 첫 대회가 열렸다. 월드컵 축구에 자극받아 생겨난 것이지만, 영연방과 유럽에서는 미식 축구 이상으로 인기가 높다. 우리에게도 일제 강점기 양정고보, 중앙고보, 배재고보 등 고교팀을 주축으로 경기가 활발했고 해방 후에는 연고대 및 사관학교 생도들이 즐겨 겨룬 종목이다. 그러나 근래 축구, 야구, 테니스, 골프에 밀려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인상이다. 

럭비 경기란 단합과 우애, 도전과 결속이 경기의 기본 컨셉이다. 이는 이번 남아공 우승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남아공은 일찍이 흑백 차별이 극심한 나라였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래 소수 백인 지배층과 다수 흑인 피지배층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48년 남아공 정부는 인종차별(Apartheid)을 공식 강령으로 채택했다. 인종차별을 합법화한 것이다. 1956년에는 저항하는 만델라 등 흑인지도자들을 대대적으로 구속했다.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27년간 수감되었다가 석방), 전체 흑인지도자의 양형이 수천 년이 넘는다고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흑인 저항단체인 ANC, 범아프리카회의(PAC)는 1960년부터 무장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이때 희생된 사람만도 수 만명에 달했다. 

단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투표권 제한은 물론, 식당 출입이 구분되고 대중교통 수단도, 학교도 분리했다. 이렇게 해서 상호 증오심은 살육과 보복전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비호를 받은 백인 지배층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차별정책은 공산주의 대항이라는 명제로 치환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남아공의 인권문제보다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공산주의 확대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남아공 정부의 강경 탄압정책을 묵인했지만 명분은 약했다. 다행히도 1989년 동서독 통일과 냉전 체제의 해체로 이런 통치 기반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냉전 체제 해체로 탄압의 근거가 사라지고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영국과 남아공 백인 정부는 통합과 평화가 더 큰 이익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탄압과 대결이 더 큰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수정한 것이다. 

냉전 체제 해체와 함께 집권한 디 클라크 남아공 대통령은 1990년 이후 만델라 등 흑인지도자의 석방, ANC의 합법화 승인, 인종차별법 폐지 등을 실시하고 나라의 민주화와 흑백통합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94년 흑백이 함께 하는 자유총선이 실시되고, 같은 해 5월 ANC의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만델라는 흑백의 국민 통합노선을 추진했다. 명실공히 근 1백년의 흑백 인종분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종식된 것은 만델라의 탁월한 지도력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100년 동안 누려온 백인 기득권 세력이 통절하게 반성하고, 그동안의 폭력성을 회개하면서 기득권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득권층이 여러 권한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도덕률과 영국적 규범과 신사 정신이 정치권력, 경제 자본 등 막강한 권한을 내려놓고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정신을 고양시켰다. 그것이 만델라의 흑백 통합 정신과 결합해 성공을 거둔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실이 이번 2019 럭비 월드컵 남아공 우승으로 나타났다. 이번 대회 럭비팀 주장은 흑인선수인 28세의 시야 콜리시다. 그동안 남아공 럭비 대표팀에는 흑인 선수가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1995년 첫 우승 때 1명, 2007년 두 번째 우승 때는 2명이 뛰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6명의 흑인 선수가 뛰고, 주장도 흑인 시야 콜리시가 맡았다. 그가 우승 트로피를 대표로 받으면서 외친 첫마디가 “Stronger together!”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함께 하니 강해졌다!”이다.

우리의 경우를 본다. 너무도 대립적이다. 정치가 특히 그렇다. 이것을 언론이 더 부추긴다. 분열적이고 대결적이고, 증오를 심는다. ‘조국 사태’를 통해 그것이 여과없이 노출되었다. 

아프리카는 ‘천년의 전쟁’이라는 흑백 분규를 해결했다. 우리는 같은 혈통, 같은 피부색깔인데도 상종 못할 인간처럼 상호 적대적이다. 남북대결, 동서분열, 그리고 색깔론. 70년 체제의 기둥으로 받쳐온 기득권 세력의 통치 프레임 때문이 아닌가. 문재인이 정권을 장악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각 방면 수구 카르텔의 견고한 철벽을 뚫지 못한다. 

우리의 기득권 세력은 어떤 세력인가. 가치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 중심으로 세상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특히 누리는 자들이 학벌 동맹을 결성하고, 선민의식 특권의식에 젖어 군림하지 않았던가. 

“Stronger together’의 정신이 절실하다. 끼리끼리 뭉쳐서 이익을 극대화하자고 외치는 세상에서는 국가적 에너지를 확장할 수 없다. 분열상과 파편화는 있을지언정 통합을 이루기 어렵다. 따라서 가진 자, 배운 자들이 아량을 갖고, 배려해야 한다. 남아공의 예에서처럼 횡포를 부렸던 힘있는 자들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지난날의 오류와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고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면 누가 외면할 것인가. 사실 사회적 약자는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함께 하니 강해졌다는 남아공 럭비팀 주장 시야 콜리시의 외침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자 한다. 

이계홍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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