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공모전 수상작]

[오피니언타임스=방제일]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리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스위치히터인 미키 맨틀의 명언으로 시작하는 <머니볼>은 2002년 메이저리그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다. 오클랜드는 월드 시리즈 챔피언십을 9회나 차지한 명문 구단으로 현재는 1990년 이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채 챔피언십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됐다. 이유는 하나다. 대표적 스몰마켓인 애스레틱스의 ‘규모의 경제’가 대형 마켓을 가진 구단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LA, 보스턴과 시카고로 대변되는 메이저리그의 대형 구단들은 오클랜드를 비롯한 스몰 마켓 팀들이랑 매년 쓰는 돈의 단위 자체가 다르다. 따라서 오클랜드는 매년 자신들이 손수 키운 유망주들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다른 팀에 빼앗긴다. 이런 스몰 마켓의 생리를 아는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은 어떻게 해서든 구단이 승리하게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머니 게임이 된 지 오래인 프로스포츠에서 빌리 빈의 도전은 매년 실패한다.

‘세상에 부자 구단이 있고 가난한 구단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우리(오클랜드)가 있다’

자조 섞인 빌리 빈의 말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스몰 마켓을 운영하는 모든 팀들이 겪고 있는 고민이다. 빌리 빈은 조금 더 나은 선수를 영입하고자 클리블랜드의 단장인 마크 샤파이로를 찾아 간다. 그의 몇몇 제안은 한 ‘애송이’에 의해 좌절된다.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25살짜리 애송이의 이름 피터 브랜드다.

그는 빌 제임스라는 통계학자가 고안한 ‘세이브 매트릭스’의 신봉자다. 여기서 ‘세이브 매트릭스’란 수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가치와 야구 전략을 새롭게 정립한 이론서를 말한다. 하지만 당시 경험과 직관을 믿는 야구계의 전통에 따라 이는 불온서적이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취급받았다.

과감하게 피터 브랜드를 영입한 빌리 빈의 구단. 수뇌부의 반대에도 피터와 함께 새로운 야구 방법론을 팀에 이식시킨다. 그것은 전통적인 1차 기록(투수의 경우, 승리, 방어율 삼진 등의 기록을 의미하며 타자의 경우, 타율, 타점, 홈런 등을 말한다)들로 선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2차 기록이나 세부 기록으로 저평가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터와 빌리 빈, 그리고 빌 제임스가 가장 주목한 타자들의 기록은 바로 ‘출루율’이다.

수학과 통계로 현대 야구를 바꾼 ‘세이브 매트릭스’

‘출루율’, 빌 제임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피터는 야구 선수들과 대중들 모두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몰이해로 인해 메이저리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선수들을 오판하고 팀을 잘못 구성하기에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터는 선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사야 한다고 빌리 빈에게 역설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득점이 필요하며, 여기서 그동안 야구가 가장 오판한 개념인 ‘출루율’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제시한다. 안타는 분명 득점을 만들 수 있고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볼넷 또한 안타에 준할 만큼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출루율’이 중요했던 까닭은 이 기록에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타격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기에 타자는 슬럼프 및 부침을 겪는다. 그러나 선구안, 즉 스트라이크와 볼을 고르는 ‘눈’에는 결코 기복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타자의 출루율은 매년 평균을 상회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좋은 공을 치면 안타 확률이 늘어난다. 나아가 상대팀 투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공을 던진다면, 한번 상대팀과의 경기에서 대개 3일 연속으로 경기를 하는 야구 특성상 상대편 불펜 운영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수학적 논리'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들은 통계를 바탕으로 야구란 게임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매년 162경기라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99경기를 승리해야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다. 이 99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814타점이 필요하며 645점 이하로 실점해야만 한다. 피터는 수치로서 선수들의 가치를 설명한다. 빌리는 그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천재’란 소리를 들으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나 처절하고 철저하게 실패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2002년, 양키스의 기록을 갱신한 기적의 오클랜드

이후 오클랜드는 기적의 20연승을 하면서 그 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빌리와 피터의 도전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패하며 그들의 도전은 막을 내린다. 그 후 빈은 그의 수완을 높게 평가한 보스턴 구단주의 영입 제의를 받는다. 빈은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125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연봉 제안을 거절하고 애슬레틱스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이유는 빌리 빈이 아닌 이상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빌리에게 감정이입해 본다면, 자신이 보스턴으로 가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추구했던 ‘야구’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프로스포츠는 더 이상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스포츠를 장악한 현재 테제는 바로 'MONEY IS VICTORY'란 테제다. 빈은 혁명가로서 그 테제에 계속해서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야구의 ‘자본’과 ‘전통’에 도전했던 <머니볼>을 보며 한편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주류 경제 이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다른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의 진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는 역설적으로 공산주의를 주창한 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모순을 철저하게 파헤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자본가들은 마르크스에게서 배우며 자신들의 모순을 수정해 나갔다. <머니볼> 또한 마찬가지다. 빌리 빈이 빌 제임스의 ‘세이브 매트릭스’라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오클랜드의 성과는 현대 야구에 수학과 통계를 이식했고 구단 운영과 선수 가치에 대한 패러다임마저 바꿔버렸다.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시카고 등 대형 구단은 오클랜드의 성공을 보며 자신들이 가진 ‘자본’을 보다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배웠다. 이후 현대 야구의 양극화는 보다 심화된다. 역설적으로 빌리 빈의 <머니볼>이 머니 파워를 보다 강화시킨 것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에 우승을 노리는 구단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머니볼>이 얼마나 심화되어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 나아가 오클랜드의 도전은 분명 실패했다. 하지만 가능성을 제시하며 야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빌리 빈이 제시했던 <머니볼>은 야구사에 있어 <자본론>이며, 빌리 빈은 야구의 경제 혁명을 이끈 칼 마르크스라 평가한다면 지나치게 높은 평가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빌리 빈은 ‘기적의 20연승’ 이후 지금까지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남아 자신의 업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팀의 부사장으로 승격한 그는 과거의 <머니볼>이 아닌 <메디신 볼(Medicine Ball)>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메디신 볼>이란 현재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비능률적인 부분은 의학적인 부분이며, 선수들의 부상을 줄여 경기력을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배우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빌리 빈. 그의 새로운 도전과 스토리는 우리가 머니 게임이 된지 오래인 프로스포츠를 즐기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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