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82년생 김지영>을 얼마전에 읽었다. 오래전부터 화제가 된 책이고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못보고 있던 차였다. 잠깐 짬이 나서 들렀던 도서관 문학 코너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하고 앉은 자리에서 한시간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술술 읽혔다. 주인공 이름을 왜 김지영이라 지었는지 단박에 이해갈만큼 꽤 보편적이고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남편을 비롯해서 김지영 주변의 인물들이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얼핏 보기에 김지영은 꽤 운이 좋은 사람같았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그런 사람조차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눈길을 주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화가 결정됐다.

영화가 완성되고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올라온 댓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원작에 없는 빙의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페미색을 지우고 상업영화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라는 투의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빙의는 원작에 있는 설정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비난을 퍼부은 셈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도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자극적인 내용의 대사를 인용하고 벌점 테러를 자행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네이버영화

어떤 작품이나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전제는 먼저 작품을 봐야 한다. 그것도 비교적 꼼꼼하게 말이다. 그래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고 거기에 자신의 시선으로 작가의 생각을 비판할 수 있다. 작품을 보지도 않고 거기에 대해 논한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한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악플을 받았다. 악플을 남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것도 그 책을 읽지조차 않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마치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전염병같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가까이 가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페미니즘이 얼마나 해로운지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여성이 남자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결국엔 여자가 남자위에 서는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인지 금방 깨닫게 될텐데 행여 ‘페미’물이라도 들까봐 ‘페’자만 봐도 퉤퉤퉤 침뱉고 욕하고 돌아서기 바쁘니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설과 영화를 비난했지만 오히려 그 덕인지 소설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영화 역시 흥행 중이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쉽게 읽히고 공감가는 책이긴 한데 과연 그만큼 많이 팔릴만한 책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좋은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만도 아니고 많이 팔렸다고 좋은 작품인 것도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의 기록적인 성공은 물론 작품의 힘이 제일 크겠지만, 읽어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욕을 퍼부운 사람들의 공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교훈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자는 얘기다. 그들은 알까. 이 거대한 성공에 자신들의 공이 지대하다는 것을. 단체로 저작권 지분 소송이라도 하시라고 조언을 드려야 할까.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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