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사진작가의 14,400km의 여정]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3]

사람들이 살거나 살았던 건물들

애초에 동굴에서 살았던 때가 가장 편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비와 눈을 겨우 피하면서
빗살무늬토기에 음식을 담고
벽에 들소를 새기고...

이제 첨단 냉장고와
값비싼 그림으로 장식을 하는 시대이니
우리는 동굴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불을 환하게 밝힌 바르샤바 구 시가지의 건물.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조명을 밝힌 듯싶다.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려 지은 멋진 교회,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아 쓸쓸하기 그지없다.
러시아의 기차역들. 그 어디를 가든 현대식이 아닌 19세기의 건물들이고 천장에는 혁명시대의 그림들이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기차역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살짝 부러워진다.

건축학도가 유럽에 갔다면 건축 사진만 찍어도 1만 장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건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리라.

러시아의 기차역은 건물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역사마다 독창적이며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조명까지도 저마다 달랐고,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그의 이름을 불러다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꽃이었고
부른 후에도 꽃이었다.

야생화...
들판이나 강변, 숲속 어딘가에 피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고
조용히 짧은 시간을 살다가 조용히 시드는 것이 야생화의 운명.
그러기에 가녀리면서도 강하다.
이름 없는 들꽃이 아니요, 이름 모를 들꽃도 아니요, 자신의 외모에 맞는 이름을 지녔다.
박학(薄學)한 내가 그 이름을 모를 뿐.

유럽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꽃들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우랄산맥이라 하지만 어찌 꽃이 경계를 지을까?
땅이 있고 햇빛이 있고 공기만 있다면 야생화는 스스로를 피어 올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 밖은 자작나무와 분홍바늘꽃을 비롯한 수많은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는 거대한 화원이다. Ⓒ김인철

스스로가 행복하면 행복하다

환한 웃음 뒤에 어찌 아픔이 없을까?
아름다운 옷 뒤에 어찌 애달픈 그리움이 없을까?
분수를 바라보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짧은 지난날에 어찌 상처가 없을까?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리따운 소녀에게 어찌 실연의 고통이 없을까?

그럼에도 인생은 살 만하다.
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깨가 드러나는 짧은 원피스에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리따운 소녀들. 아무런 근심·걱정 없어 보이는 밝은 표정에 보는 이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진다.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편에 자리 잡은 굼백화점의 7월 한여름 모습이다. Ⓒ김인철
Ⓒ김인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참상을 최초로 폭로한 전 폴란드 외교관 얀 카르스키(1914~2000). 그의 숭고한 의기 때문인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그의 동상에 엄마와 어린 딸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김인철
길거리서 칼잠을 자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그곳이 천국이다. Ⓒ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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