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뒤안길]

볼리비아의 희망에서 환멸만 남긴 정치적 망명자로 전락
성공따른 인기를 권력 영구화 승인으로 오인, 국민 반발 초래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그는 14년 가까운 통치 기간을 끝내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그런 선택을 했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연임 제한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하려 시도했다. 이는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었다. 결국 지난 10일 국민들의 거센 부정선거 항의 시위와 경찰 및 군부의 사퇴 요구에 굴복,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이야기다.

모랄레스는 대통령직 사임 하루만인 11일 멕시코로 정치적 망명을 떠났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은 그가 14년에 걸쳐 이루었던 업적들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한때 볼리비아의 희망으로 여겨지며 국민들의 낙관론을 한껏 부풀렸던 그는 많은 국민들에게 환멸을 남긴 채 결국 정치적 망명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랄레스 볼리비아 전 대통령 Ⓒ모랄레스 페이스북

그의 몰락과 함께 볼리비아의 앞날도 불확실해졌다. 망명길에 올랐지만 모랄레스는 지난 10월20일 치러진 대선에서 45%가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많은 볼리비아 국민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MAS)은 상·하원 모두에서 3분의 2에 달하는 절대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물론 MAS도 모랄레스의 사임이 군부 쿠데타에 의해 강제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모랄레스의 사임이 군사 쿠데타냐, 아니면 민주적 절차를 회복시켜 민주주의를 구한 것이냐를 둘러싸고 모랄레스의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간에 폭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사임 시 대통령직을 승계받기로 돼 있던 부통령과 상·하원 의장 등 서열 승계 1∼3위가 모두 동반 사퇴해 야당의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자신을 임시대통령으로 선포했다. 그녀는 빠른 시일 내에 자유롭고 공정한 대통령선거를 다시 치러 볼리비아에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신속하게 아녜스를 새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MAS는 모랄레스의 사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그녀를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아녜스가 새 대선에 MAS의 참여는 가능하다면서도 모랄레스의 출마는 금지시킨 것에 대해 MAS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모랄레스는 멕시코에서 에너지를 새로 충전해 더 강한 모습으로 볼리비아로 돌아가겠다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정치적 공백 속에 혼란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2006년 1월 볼리비아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모랄레스는 수세기에 걸친 경제적 착취를 종식시키고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없앨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의 약속들은 상당 부분 실현됐다. 그의 취임 당시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서 좌파 지도자들이 집권에 성공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 속에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모랄레스는 다른 나라의 좌파 지도자들과는 달리 유연한 경제정책으로 남미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중 하나이던 볼리비아의 많은 국민들을 빈곤층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뛰어오르게 했다. 볼리비아는 그의 통치 아래 높은 경제성장으로 경제 부흥을 구가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성공에 취한 모랄레스는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하겠다는 헛된 꿈에 사로잡혔다. 성공에 따른 높은 인기를 권력 영구화를 국민들이 승인한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몰락을 자초했다.

2006년 1월 취임한 모랄레스는 2009년 대통령의 연임을 2번으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하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헌법 개정 전의 당선은 예외로 했다. 2번째 임기 종료가 다가오던 2016년 모랄레스는 스스로 개정한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 무력화를 시도한다. 그는 볼리비아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연임 제한 규정 철폐를 묻는 국민투표를 단행했다. 국민들은 그의 희망과는 달리 연임 제한 규정 철폐에 반대해 모랄레스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10년에 걸친 오랜 집권으로 볼리비아의 주요 자리들은 모두 모랄레스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랄레스는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연임을 제한하는 것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내 또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난달 치러진 대선에서 모랄레스는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투표를 피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볼리비아에서는 50% 이상 과반 득표를 하거나 2위와의 격차가 10%포인트 넘어야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그런데 2위이던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과의 표 차이가 많지 않아 결선투표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던 개표가 돌연 24시간 중단됐다가 하루만에 재개되면서 1, 2위 간 격차가 10%포인트를 훌쩍 넘겨 모랄레스의 당선이 확정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당연히 부정투표라는 국민들의 저항이 시작됐고 선거를 감시했던 미주기구(OAS)도 광범위한 선거부정이 자행됐다며 모랄레스의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뛰어난 치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랄레스의 부침은 많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가 선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볼리비아 국민들은 모랄레스의 경제정책 성공으로 많은 혜택을 누렸다. 그의 경제 및 사회개혁 정책들은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다만 그가 뒤엎으려 한 민주 절차를 바로잡기 위해 모랄레스를 권좌로부터 끌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받던 지도자라도 쫓겨날 수 있음을 모랄레스는 보여주었다.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욕구도 그만큼 더 커진다. 이를 깨닫지 못한 것이 그를 무너지게 했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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