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현의 사소한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양재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악플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소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 원색적인 비난이라니.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이런 상황에선 악플에 대한 자성이 일어나고 이를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또 다른 악플을 쏟아낸다. 원색적이고 충격적인 비난 또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뒤로도 다른 악플이 이어진다. 그렇게 악플은 대상만 바뀐 채 계속된다.

절대 끝나지 않는 무한의 굴레. 대체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악플의 기저에 깔린 감정이 하나 있다. 바로 ‘미움’이다.

Ⓒ픽사베이

미움 가이드라인이 없는 사회

미움은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감정 중 하나다. 우리는 자라는 동안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됐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미움을 표현하는 것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워해도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으니, 예수는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지만 죄는 미워해도 된다고 했으며, 맹자도 ‘수오지심’이라 하여 남의 옳지 못함은 미워해도 된다고 했다. 빙고. 세상에는 미움을 표출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이분들이 미워해야 할 것만 가르쳐주시고 미워하는 방법은 안 가르쳐주셨다는 거다.

미움의 대상만 있을 뿐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은 결국 선을 넘기 마련이다. 누구든 티끌만큼의 논란거리가 발견되는 순간, 온갖 사회적 이론과 논리가 더해져 미워해도 되는 훌륭한 명분으로 발전된다. 그것이 진짜 옳고 그른가는 상관없다. 어차피 다양한 입장이 충돌하고 다양한 맥락이 교차되는 현대 사회, 만인에게 옳은 일은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의 행동에 부정적인 명분이 붙고 나면, 그 이후에는 어떤 브레이크도 듣지 않는다. 미워할 거리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동안 표출하지 못했던 미움을 마음껏 발산해낸다. 선을 넘어도 괜찮다. 어차피 저 사람은 미워해도 되는 사람이니까.

희노애락애오욕의 여섯째, ‘미움이’

누군가는 미움이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좋은 조롱이다. 동시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미움은 그냥 미움이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자연스럽듯 미워하는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어떻게 정제하고 발전시키느냐다.

사랑에 대해선 이미 우리는 많은 가이드라인을 세워 놨다. 사랑의 대상에 따라 연인, 우정, 존경, 성욕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고, 사랑해도 되는 대상, 사랑하면 안 되는 대상도 나눠두었다. 어떠한 애정 관계도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과 사랑하는 마음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따로 배운다. 사랑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것을 경계하여 사랑과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있다.

그러나 미움에 대해서는 그러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무조건 억압해야 한다고만 배웠을 뿐, 어떻게 정제하고 발전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배운 바도 없다. 이미 생긴 마음을 어떻게 다룰 바가 없고, 길들일 수 없는 마음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미움’에도 원칙이 있어야

미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중요한 건 밸런스다.

사랑과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듯 미움과 생활에도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과 사회 규범의 밸런스를 맞추듯, 미움에서 나오는 행동과 사회 규범의 밸런스도 맞춰야 한다.

그 경계를 맞추기 위해선 두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바로 경험과 원칙이다.

많은 사랑을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듯, 많은 미움을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의 미움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원칙도 세우고 사회가 용인하는 원칙도 익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 바로 미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 또한 수많은 미움을 경험했고, 그를 통해 원칙도 세웠다. 나의 원칙을 몇 가지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군가가 밉다면 미워하되, 그 미움에 쓸데없는 당위성을 부여하지 말 것. 내가 누군가를 ‘그냥’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미움은 나의 책임이다.

둘째, 제3자에게 절대 공감 받으려 하거나 같이 그를 미워하도록 설득하지 말 것. 이 미움은 나만의 감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내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 인간으로서 그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침범하도록 하지 말 것. 결국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행동을 감정에 맡기지 않고 이성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인간 말이다.

양재현

사소해 내놓지 못했던 시선.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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