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가을걷이가 끝난 벌판엔 어느새 겨울이 달려왔습니다.

풍성한 결실로 겨울을 준비했던 가을.  

가을엔 한해 수확에 감사하고 다가오는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추수감사절(땡스기빙데이) 풍습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한가위가 조상께 올리는 추수감사 의식이라면, 동짓달 시루떡 고사는 하늘과 땅, 집안, 심지어 부뚜막 토속신에게까지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농촌에선 고사가 끝나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팥 시루떡을 잘라 광주리에 이고 집집마다 돌렸습니다. 신이 눈에 보이는 것도, 실제 어디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신의 이름을 빌어 이웃에 베품을 실천했던 미풍이었죠.

앞집 갑순네가 오늘 고사 지내고 떡 돌리면 며칠 뒤 뒷집 동이네가 호박고자리(고지) 시루떡을 돌렸습니다. 이어 건넌말 영이네가 찰 무시루떡 고사를 지냅니다.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추운 겨울밤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시루떡을 받아먹었던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겁니다.

형편이 안되는 집은 물론 고사를 못 지냈습니다. 그러나 고사 지낸 집에선 형편이 어려운 집까지 고사떡을 돌렸습니다. 나눔과 베품이라 이름짓지 않았지만 훈훈한 마음 씀씀이가 있었습니다.

잔치 역시 나눔과 베품의 양속. 마지기 농사라도 짓는 집에선 환갑이나 혼사는 물론 주인장 생일에도 부러 마을잔치를 열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나 빌어먹는 이들도 밥에, 떡에 대접받았습니다.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함께 축하하고 즐겼던 문화였습니다.  “나 이렇게 잘사네~”하는 자랑이 아니라 잔치를 핑계삼아 이웃에게 국수 한그릇, 돼지고기 한두점 대접했던 것이죠. 소득재분배 기능이 미약했던 시절, 위화감을 줄이며 공동체를 끌어간 조상들의 슬기랄까...이즈음 품앗이 경조사와는 다른, 이심전심의 배려문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을 들녘@동이

*가을은 수확을 뜻하는 말

가을이란 계절의 이름은 수확을 뜻하는 ‘가를 베다’란 동사에서 왔다고 하죠. ‘가를’이 ‘가살’ ‘가실’ ‘가슬’ ‘가을’로...

“자네! 가실했는가?”

지금도 일부 지방에선 ‘가실하다’를 ‘가을하다’ ‘가을걷이하다’란 말로 씁니다.  가을이 곡식의 가장자리를 베는,  ‘가를 베는’ 행위가 이뤄지는 계절이란 점에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갈색이란 색깔도 가을 단풍철에 나타나는 색이라 ‘갈색’이라 이름지은 게 아닌가 합니다.

‘가를 베다’에서 ‘베다’는 ‘자르다’ ‘끊다’의 뜻. 요즘에야 농기계가 농작물을 다 수확하지만 한세대 전까지만 해도 낫으로 일일이 곡식을 베었습니다.

베품은 ‘베풀다’의 명사. ‘베+풀다’로 나눠볼 수 있고  ‘베다’는 ‘곡식을 베다’의 ‘베다’와 같습니다. ‘풀다’는 ‘실을 풀다’에서 처럼 맨 것을 끄르거나 감긴 것을 풀어지게 하는 것. 즉 수확한 걸  나눠준다는 뜻입니다.

‘나누다’는 일정한 크기의 것을 여러 조각으로 내어 조금씩 몫을 준다는 의미로 역시 베품의 언어입니다.

말 구조로 보면 ‘베풀다’는 거둬들여서 푸는(주는) 것이요, 나눔은 있는 걸 쪼개주는 것으로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다 하겠습니다.

‘껄껄껄’이란 SNS 우스갯 소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껄~껄~껄~”한다 해서 회자되는 말로 ‘좀 더 잘할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베풀 껄~’ 한다는 것이죠.

날씨도 추워지고 나라경제도 어렵습니다. 얼마 전 서울 성북구에서 네 모녀가 숨진 지 한달만에 발견돼 충격을 줬습니다. 언론은 "가세가 갑자기 기울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네 모녀는 카드대금 및 대출금 체납액이 수천만원에 이르고 3개월간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다고 하니, 몇해전 송파 세모녀 사건과 판박이입니다.

시루떡 돌리던 시절에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가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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