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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가을이 제격인가?[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 승인 2019.11.20 12:22

[논객닷컴=이영환] 아침, 저녁으로 겨울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가을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필자는 주로 밤늦게 산책을 하는데 밤공기에서 벌써 겨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니 과연 가을이 왔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최근 들어 유난히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여름과 겨울만 있는 이계(二季)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겨울이 와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가을의 정취를 느낄 여지가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햇볕이 좋은 오후나 단풍나무의 붉은 색조에서 가을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득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오래된 구호가 떠오른다. 짐작컨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에 책을 가까이하면서 지난날의 성취를 돌아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독서를 권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가을이 짧아지면 그만큼 독서의 기간도 짧아지고, 그래서 열의도 점점 식어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혁명의 시대에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깊은 사색(思索)이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서는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그 반대인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독서는 철지난 유행처럼 취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권태다. 따분하고 지루한 삶은 누구나 견디기 어렵다. 이런 성향으로 인해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한시라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에서 집중하는 사람을 보면 궁금하기 짝이 없다. 과연 무엇이 그리 중요해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보행을 방해하면서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혹시나 그 이유가 이런저런 허접한 가짜뉴스를 보는 것이라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필자가 굳이 스마트폰을 거론한 이유는 책의 가장 큰 경쟁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여러 이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스마트폰일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구글 검색을 이용해 관심 분야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전자책을 읽으며,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좋은 동영상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유익한 일이다. 이는 스마트폰이 독서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용도로 스마트폰을 활용하게 된다면 전반적인 문화 수준을 향상시켜 한국사회의 선진화를 달성하는 데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용도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정보기술혁명이 오히려 대중을 우민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픽사베이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기술이 우리 삶의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시대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면 좋은 책을 체계적으로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좋은’ 책과 ‘체계적’ 습관이다. 이에 관한 논의에 앞서 책의 역사를 일별해보면 왜 책이 중요한지,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책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저장하고 공유하는 매체로서 인류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지않은 미래에 컴퓨터와 인간의 두뇌를 연결해 필요한 모든 지식을 두뇌에 업로드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므로 굳이 어렵게 공부할 필요도 없고, 열심히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책은 인류와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정보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기존의 정보저장매체는 쓸모가 없어지는 과정이 되풀이 되어왔다. 반면 책이라는 매체는 재질은 변했지만 본질 면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책이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는 마지막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책이 진화해 온 역사를 일별해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대략 5,000년 전에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쓰인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가 등장한 이래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현재 전자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후 수많은 이야기의 전형이 되어 서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 사후에 출판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지동설을 확립하고 우주의 운행원리를 밝히는 초석이 되었다. 1776년에 출판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1859년에 출판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이런 사례들을 들자면 끝이 없다. 이와 같이 문학과 과학을 망라한 모든 분야에서 책은 지식의 보존과 축적 및 공유를 통해 인간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사회발전을 위한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고, 나아가 과학발전을 촉진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는 등 실로 엄청난 역할을 해왔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 『시빌라이제이션』에서 강조했듯이 15세기 초까지는 경제 규모 면에서 동양(대체로 중국을 지칭함)이 서양보다 앞서 있었지만 이후 역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퍼거슨은 그 원인으로 경쟁·과학·재산권·의학·소비·직업이라는 여섯 가지 요인을 강조했다. 필자는 여기에 책의 대중화를 추가하고 싶다. 1445년경 요하네스 쿠텐베르크가 금속활판 인쇄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책을 출판하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새로운 계몽주의 시대가 열렸다. 이 모두 새로운 지식을 널리 공유하고 축적할 수 있는 매체로서 책의 위상이 공고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책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건이 서양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좋은’ 책을 ‘체계적’으로 읽어야 하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 매일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과 정열을 투자해 읽을 만한 책을 판별하기 쉽지 않다. 출판사의 광고나 서평으로는 충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우선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구글 검색을 하면 저자의 이력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아가 저자의 최근 관심사가 책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아니면 기 출판된 책의 지명도를 이용하려고 출판사가 기획해 만든 책인지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를 선정할 때 감독에 대해 알아야 하듯 책을 선정할 때 우선 저자에 대해 충분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책을 읽는 것이 권태를 피하기 위한 임시변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좀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이 조심스럽고 진지한 자세로 책을 읽으려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책을 선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싶은 분야를 선정한 후 이에 맞는 책을 단계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체계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이와 관련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책을 함께 읽으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체계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배야 한다. 즉 하루 일정 시간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한국인들에게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굳이 독서 관련 국제적 통계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OECD 국가들 중 한국인의 독서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게다가 독서율이라는 것이 일 년에 책 한권 이상을 읽는 사람들의 비율이라고 하니 독서의 질을 반영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지표다. 그런데도 독서율이 60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니 인구의 40퍼센트는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셈이다. 더욱이 독서의 질을 감안한다면 한국인의 독서 관련 현황은 부끄러울 지경이다.

필자는 독서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현재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회적 갈등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고체계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세계관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매일 유사한 체험을 하고 익숙한 자료만 접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교류한다면 이미 굳어진 세계관이 바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지키는지도 모르면서 ‘보수’임을 자처하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진보’를 표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자신의 세계관을 점검하고 필요시에는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데는 독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행을 하거나 명상 수행을 통해서도 자신의 세계관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겸허해지게 만드는 데는 독서만큼 유용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학자나 전문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이르게 된다.

필자는 얼마 전 인간의 정서(emotions)와 느낌(feelings) 및 감정(sentiments)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최근 저서 『느낌의 진화』를 읽으면서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형성 과정에서 감정과 느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감정과 느낌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려고 젊은 시절 대강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으려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생물학, 심리학 및 신경과학 분야의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통찰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공유광장(www.iksa.kr) 운영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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