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기의 시사 톱아보기]

[오피니언타임스=정준기] 유년 시절 기억이다. 한 어머니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막내아들이 갓 입대한 모양이다. 그녀는 방송 카메라를 향해 “밥 좀, 아니 밥만이라도 잘 주이소”하고 울먹였다. 기억은 여기서 끝난다. 그래서 나는 노모(老母)의 부탁이 막내아들에게 전해졌는지 잘 모르겠다. 막내아들이 밥만이라도 잘 먹고 다니는지 역시 잘 모르겠다. 어떤 결말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밥’ 때문이다.

Ⓒ픽사베이

밥은 평등하다

밥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다. 누구나 먹는 밥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주린 배를 채워준다. 그래서 밥은 평등하다. 택시기사의 밥과 대기업 사원의 밥이 다르지 않듯, 내 밥과 네 밥은 서로 동등하다. 이처럼 세상 모든 밥이 서로 같을 텐데, 유독 한 밥만 그렇지 않나 보다.

바로 채식(菜食)이다. 정확히는 ‘군(軍)채식’이며 최근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 인터뷰를 통해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아래는 채식주의자 예비 장병 인터뷰에 달린 댓글 일부이다.

“이기적인 놈들, 취사병만 죽으란 거지”

“사흘 동안 가두면 생고기도 뜯어 먹을 듯”

“육식주의자 선언하면 하루 세끼 고기반찬 줄거냐”

반대 여론이 찬성을 훨씬 앞질렀다. 찬반 비율을 떠나 반대 이유에 주목하고 싶다. 얼핏 보면 ‘채식주의자용 군 식단 도입’ 반대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하나의 공통된 감정에서 출발한다. 반대 댓글 전반에 걸쳐 ‘집단에 종속되지 못하는 개인’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다. 개인 신념이나 가치관 따위는 집단 앞에서 사소해진다. 이들 관점에서는 채식주의자용 군 식단 도입 자체가 하나의 특별대우이자 개인 선택에 따른 비용을 국가가 떠맡는 행위가 된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먹을 수 있는 밥’이 없어서 “입대가 두렵다”고 말한 한 예비 장병은 집단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개인 신념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모난 돌’이다. 모난 돌은 두고 볼 수 없다. 때려서라도 둥글게 만들어야 한다.

당신의 밥은 안녕하신가

‘모든 돌을 둥글게’ 만들자는 주장은 개인의 집단화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존중받아야 할 천부권인 개인 신념을 다수의 이름으로 굴복시키기는 셈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대를 앞둔 채식주의자가 자신의 밥을 걱정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청년이 걱정한 그 밥을 우리는 어떻게 대했나. 밥을 퍼주긴커녕 밥그릇부터 걷어 차버렸다. 우리와 같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채식 선택권은 양심의 자유다. 지난 2012년 인권위원회는 채식 선택권을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면서 ‘교도소 재소자도 채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군 채식주의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앞으로 실시될 군 인권 정책에서 채식주의자의 자리 역시 없다. 지금까지 논의조차 되지 않은 문제다. 징병제 대한민국의 슬픈 초상이다.

모병제인 미국과 캐나다는 ‘채식할 권리’를 군 식단은 물론 전투식량에도 보장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은 극소수인 불교와 유대교, 힌두교 장병을 위한 채식까지 제공한다. 같은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은 채식할 권리를 식단을 넘어 보급 품목에도 적용했다. 전투화 등에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제품을 도입하는 식이다. 이들은 모난 돌을 때리지 않았다.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회의 수준”이라고 했다. 최근 불거진 채식주의자용 군 식단 도입이 단순한 ‘반찬 투정’으로 이해되면 안 되는 이유다. 채식하고 못하고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개인 신념을 존중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당신의 밥은 안녕하신가. 당신의 밥이 안녕하다면 다른 이들의 밥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내 밥과 네 밥이 서로 같은 세상을 우리는 지금까지 원하지 않았나.

 정준기

 내 글에 취하지 않으려 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과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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