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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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임종건] 주한 미군은 철수할 것인가? 철군론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의 한미관계에서 이것은 제법 개연성이 있는 질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 국방성이 기사의 즉각 취소를 요구할 정도로 강력 부인하기는 했지만, 국내의 한 신문은 한미 방위비협상이 실패할 경우 1개 여단 규모의 미군 철수 가능성을 보도하기도 했다.

1953년 6월 한국전쟁 종전 직전까지 32만 명 수준이었던 주한 미군은 이후 줄곧 줄어 현재는 2만 8,500명이다. 추세적인 측면에서 주한 미군의 역사는 감군의 역사이다. 언젠가 한국은 미군이 없이 살게 된다고 봐야 한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 말기 남한지역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기 위해 진주한 미군은 1948년 철군으로 촉발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국으로 다시 왔고, 현재는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과 함께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66년째 주둔하고 있다. 이 조약에도 주한 미군은 언제든 미국이 원하면 떠날 수 있도록 돼 있다.

주한 미군은 한국전쟁의 교훈으로 인해 대한민국 안보의 동의어였다. 그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국내의 좌파세력들도 주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지만, 미국 행정부의 철군을 막는 것은 한국 외교에서 사활적인 과제였다.

한국전 종전 후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6만 명 수준으로 감축할 때 이승만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안전판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닉슨행정부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7사단 2만 명을 감축했고, 카터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추가 감군해 현재의 병력규모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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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오고 있는 철군 논의의 배경은 매우 복잡하지만, 그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기업인 출신답게 동맹을 가치공유의 개념이 아니라 거래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동맹보다 미국의 이익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그는 2016년 대통령 선거 때 이미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들로부터 분담금을 대폭 올려 받을 것이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나토(NATO), 일본에 비해 동맹의 고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은 미국의 분담금 협상에서 표적이 될 운명이었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성공해야 보다 큰돈이 걸린 일본 나토 사우디 등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보고, 만만한 한국과 제일 먼저 협상을 시작했다. 흥정을 전제했다지만 전년 대비 다섯 배나 올려 50억 달러(약 6조원)를 요구한 게 문제였다. 이런 흥정은 조폭사회에서나 있는 일이지, 국가가 더욱이 동맹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거래는 아니다.

지난 해 분담금 협상은 전년 대비 8.2% 올려 10억 달러(1조 2,000억원)로 합의됐다. 트럼프는 이 10억 달러에 대해서도 한국에 전화 한 통화를 해서 받아낸 것이며, 뉴욕에 있는 자신 소유의 아파트 월세 받기보다 쉬웠다고 매우 모욕적인 언사로 떠벌였다.

그동안 한국은 1991년 체결된 분담금특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전체 주한미군 비용의 절반 수준에서 분담금을 부담해 왔다. 다섯 배의 인상은 종전의 주둔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그것의 네 배를 보너스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를 합리화하기 위해 미국은 여러 가지 비용항목을 신설했는데 그 중에는 해외에서 행하는 미군 교대 병력의 훈련비용까지 한국이 내라는 것도 포함됐다고 한다. 양식 있는 미국인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중에서 가장 국력이 취약한 한국을 상대로 이처럼 난폭한 흥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를 느낄만한 일이다.

철군 가능성이 현실화 하고 있는 배경과 관련, 미 행정부의 인적구조를 지적하는 소리도 있다. 1기 행정부에서는 동맹의 가치를 중시한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 틸러슨 국무장관,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같은 ‘어른들(Adults)’이 있어 트럼프의 무리수에 제동역할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트럼프의 의중을 추종하는 ‘예스맨’들로 채워진 듯하다. 특히 애스퍼 국방장관, 밀러 합참의장 등 군부 인사들조차 분담금 협상을 고리로 철군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우려되는 현상이다.

더욱이 한국의 대 미 의회 로비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지소미아 파동을 거치면서 미국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진 상태다. 주둔비 인상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트럼프의 명분은 미국인 사이에서 나름의 지지를 받는 면도 있다.

한 가지 위안은 미국이 철군 같은 동맹에 영향을 주는 정책결정을 대통령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따라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할 수 없도록 해놓았고, 현재의 2만8,000명을 유지하도록 더 강화된 내용의 내년도 국방수권법이 의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지난 주 국회 여야 원내대표단의 미 의회 방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방위비 인상요구가 지나치다는 여론을 확인한 것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언론이 사설에서 같은 시각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1970년대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군 정책은 박정희 유신정권과 이른바 코리아게이트(박동선 스캔들)로 인해 한국에 관한 미국 내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여론과 의회, 군부의 반대로 저지될 수 있었다. 지금도 철군론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전방위적인 대미 설득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주장하듯 “갈테면 가라”고 말한다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그런 감정적인 대응은 미국 여론을 악화시켜 철군을 재촉할 뿐이다. 최근의 철군논의를 통해 한국은 주한 미군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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