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의 청년실격]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이번 학기에 고용관계론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경영학과는 사실상 “피피티 만들어서 발표하기 학과”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 같은 수업 방식도 교수들의 매너리즘 중 하나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천한 학부생이 어쩌겠는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처럼 노조를 설립해서 파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팀 프로젝트 과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다. 피피티 만들기는 백색소음과 함께 카페인이 무척이나 필요한 작업이다. 다행히 우리 집 가까이엔 카페가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안주고 아메리카노 값도 3000원이 안 된다. 과제하기 좋은 카페다. 동네에 몇 개 없는 카페라 아파트 대학생들은 모두 노트북을 들고 그 카페로 모인다. 

삼십분쯤 딴 짓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피피티 초반 부분을 담당했다. 보통 목차 처음엔 큰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제기를 한다.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문제는 IMF때부터 본격적으로 증폭된다고 한다. 그 전에는 고만고만하게 있다가, 그 시절에 사람들이 많이 해고된 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속해서 증가했다고 한다. 자료는 노동의 유연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뭔 소리, 그냥 짜르기 쉬운거겠지.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참 기형적인 모습이다. 아니, 임금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이면, 도대체 얼마나 곯은 노동시장이란 말인가. 

Ⓒ픽사베이

좋다. 한국 노동시장은 한 번 정규직으로 고용 하면 해고가 어려워 정규직 고용을 꺼려한다는 기업 입장은 알겠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만큼만 일 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 그 일이 매일 해야 하는 일이고, 또한 안전과 직결된 일이라면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비정규직이란 적은 책임감으로 그들을 고용할 순 없다. 사람은 자신한테 주어진 책임감만큼의 역량만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주면서 최고노동을 요구하는 알바 사장님은 언제나 분노의 대상이지 않는가. 아니, 국가는 애국심을 가지라면서 왜 이렇게 안 좋은 것 투성인지 모르겠다.

카페가 따듯해서 그런지 화를 내다 땀이 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카페 안에선 캐롤이 들려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다. 갈증이 나 아메리카노를 삼킨다. 열심히 과제하느라 당이 떨어진 것 같아 마카롱도 한 입 문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게, 세상 이런 요물이 다 있나 싶다. 

캐롤과 노조, 카페와 투쟁, 마카롱과 비정규직, 직고용과 크리스마스. 

이 대립은 얼마나 기괴한 배치일까. 나는 왜 엄한데서 분개할까. 이 가식적인 분노는 얼마나 사치스러울까. 

이주호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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