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 인사이트]

[오피니언타임스=권오용] 올해 차범석 희곡상 뮤지컬 부문에 당선된 박해림 작가가 꽤 현실적인 수상소감을 얘기했다. 작가는 극본을 쓸 때마다 “돈을 내고 볼 만한 이야기인가?” 혹은 “이 이야기가 얼마인가?”를 가장 염두에 둔다고 했다.

원용해서 한마디 더해본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어떻게 평가될까. 조직에 내 돈을 냈다면 일단은 충성도가 높다. 일을 같이 해도 충성도가 높다. 결과적으로 돈과 몸을 섞으면 그 조직은 저절로 강해진다. 돈 내고 보는 관객이 많을수록 뮤지컬이 히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에 100만 명이 넘는 구성원을 가진 조직이 있다. 한국노총은 103만 명(2018년 12월 기준), 민주노총은 101만 명(2019년 4월 기준)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조합비(돈)를 내고 활동(일) 하고 있다. 공무원이 100만 명이 넘는다지만 돈 내고 공무원 하라면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양대 노조는 결속력이 크고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집권당은 민노총에 사과하기도 했다. 전경련을 찾아가 의견을 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노조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그만큼 노조는 한국에서 크고 강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조직이 주인인 노동자를 위하여 바르게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구성원의 자부심이 커가지 않고는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슴이 알고 있는 이유를 머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머리는 알고 있는 이유를 가슴은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픽사베이

정부가 ILO 협약을 이유로 국회에 제출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노조 전임자에 회사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한' 규정을 삭제했다.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남의 돈으로 급여를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마냥 좋다고만 할 건가? 이런 규정은 거부하는 것이 노동조합으로서는 더 당당하고 떳떳하다. 조금 덜 받더라도 열정만큼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만큼 자부심은 커질 것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지난 2년간 17개 시·도가 양대 노총에 지급한 지원금은 2년 새 거의 두 배가 됐다. 2016년 130억 원에서 2018년에 247억 원으로 치솟았다. 이 돈으로 노조 건물을 신축하고 리모델링하고 임차하기도 했다. 모범 근로자 해외연수 명목으로도 쓰였다. 노조의 활동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면 그 이익은 국민도 누려야 한다. 동사무소를 지어놓고 동직원들만 쓸 수 있게 한다면 그 돈은 과연 제대로 쓰인 것일까? 세금을 내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정말 갑갑한 노릇이다.

삼성의 서초동 본사에는 3층에 어린이집이 있다. 아침에 아이들은 상복 입은 시위대의 곡소리를 들으며 등교하고 있다. “아이들이 곡소리를 흥얼거린다”라고 하자 더 크게 튼다고 한다. 필자의 방배동 출근길에는 조그만 3층 건물이 있다. 빵집, 커피숍, 꽃집, 과일가게, 편의점 등 소상공인의 점포가 여럿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올봄 근 한 달가량 아침부터 장송곡을 들어야만 했다. 인도에 불법 주차된 차량에서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소리다. 경찰이 나와도 소음 기준만 측정하고 가버렸다. 그러다가 돌연 그쳤다. 왜 했는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상쾌한 아침에 곡소리를 들으며 출근했던 추억은 정말 씁쓸했다.

얼마 전엔 분당 서울대 병원 건물에서 민주노총의 시위가 있었는데 환자들이 고성과 폭행에 놀라고 두려움에 떨었다. 민주노총의 집회, 시위는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다. 강한 조직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왕성한 활동이다. 그러나 어린이, 소상공인, 환자 등 약자를 인질로 하는듯한 집회, 시위를 내 가슴은 이해할 수가 없다. 맹자의 어머니도 곡소리가 싫어 이사를 했다. 유명한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다. 우리 국민이 모두 이 나라에서 이사 가기를 바라는 것인가?

노조의 활동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게 법치의 원칙이고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데 법의 혜택은 누리면서 공동체의 원칙은 훼손시키고 있다. 폭력이 그것이다. 민주노총은 집회에서 국회의 담을 부수고 경찰을 폭행했다. 구속됐던 위원장은 6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여전히 집회와 시위를 이끌고 있다. 관공서 불법 점거도 크게 늘었다. 경찰이나 관공서는 국민들이 함께 누려야 할 공공의 자산이다. 노조의 권리를 위해 훼손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내 머리에 저장된 법치의 개념이 가슴에 도착해서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다.

드디어 삼성전자에 노조가 생겼다. 설립 이래 50년 동안 삼성전자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가 있다지만 공을 따를 수 없다. 그만큼 한국 사회를 바꿔왔다. 삼성전자의 노조도 한국의 노동운동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러기를 기대한다. 우선 출범식에서 붉은 머리띠가 사라졌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변화를 실감했다.

회사도 이제는 무노조 경영이 유노조 경영보다 더 어렵다는 현실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회사와 노조의 두 쌍두마차가 손에 손을 맞잡고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기를 바란다.

이달 초 영국 토트넘의 손흥민이 유럽 통산 122, 123호 골을 넣었다. 골을 넣은 직후 손흥민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는 기도 세리머니를 했다. 사흘 전 자신의 백태클로 발목이 골절된 안드레 고메스(에버턴)의 쾌유를 빈 것이다. 팬들은 열광했다. 축구계에서는 “Great(대단하다)”라는 찬사가 나왔다.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배려와 포용의 모습을 본 것이다. 한국인으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한국 사회의 어떤 운동이나 활동보다도 활성화되고 조직화되어 있다. 그러나 피로감도 느껴진다. 스스로 일어서겠다는 의지, 투쟁이나 쟁취보다 가치의 공유, 승패를 떠난 공감과 배려. 노동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이 이런 사회의 실현이 아닌가? 이런 핵심가치로 노동운동의 문화가 정립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자부심이 돼야 한다. 그때야말로 우리는 가슴으로 이해되고 포근히 와닿는 노동의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권오용

한국CCO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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