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토마스 하디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

가난이 첫 번째 죄, 예쁜 것이 두 번째 죄 

필연적으로 아버지는 무능하고, 술을 좋아한다. 당연히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무식하며 출신 또한 변변찮다. 그런 집일수록 자식은 줄줄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은 아니며 부끄러움도 아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 세상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 비극이 된 것은 트링감 목사가 존 더베이필드에게 ‘존 경(卿)’이라고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경’은 귀족에게 붙이는 칭호이며 시골의 하찮은 농부(실제로는 행상인)에게는 가당찮은 호칭이었다.

“실수였다”고 그냥 지나가면 좋았으련만 목사는 존에게 “당신은 훌륭한 귀족 가문의 후예”라고 여러 역사적 사실을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존이 “그딴 것은 지금 아무 소용없어요”라고 가볍게 넘기면 좋았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못 배운, 가난한 사람의 속성이다. 그날 이후 사태는 꼬이기 시작한다.

비극은 발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알로트 마을에 사는 존의 첫째 딸 테스는 그나마 학교를 다닌 덕분에 기초적 교양이 있고, 가정에 충실하며, 부모를 존경하고, 동생들을 사랑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예쁘다는 점이다. 마을에서 무도회가 열리면 청년들과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은 모두 그녀와 춤을 추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나와 함께 춤을!” 이라고 요청하지는 못한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쁘다는 사실이 밥을 먹여주지는 못한다. 노동을 해야 한다. 다행히 –실제는 불행히도- 귀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또 다른 귀족의 후예를 찾아가 일자리를 구한다. 트랜트리지 마을의 더빌 부인은 호화로운 슬로우프 저택에서 앵무새와 함께 살아가는 부호이다. 그곳에서 테스는 양계장 일을 맡는다. 그리고 외아들 알렉 더빌이 등장한다. 만약 테스가 못생기고 뚱뚱한 시골 처녀였다면 알렉은 관심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처음으로 본 알렉은 이리저리 집적거리다가 방으로 돌아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거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군! 하하하...... 한데 그 계집앤 정말 너무 예쁘단 말야.”

현대의 관점에서 이러한 여성 외모주의 소설은 용납받기 어렵다. 소설의 발표 시점이 1891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납득되지만 당시에도 <테스>는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여성 외모주의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테스의 행동이 부도덕하다고 비난받았다는 것이다. 테스의 어떤 행동이 과연 부도덕한 것일까?

Ⓒ김호경

한 번의 실수(?)를 고백한 여자 

알렉 더빌은 끈질긴 남자이며, 자신이 권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알량한 권력을 적절히 이용하는 갑(甲)의 교활함도 지녔다. 그리고 귀족의 후예라는 것도 말짱 거짓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테스는 숲속에서 알렉에게 처녀를 잃는다. 이에 대해 토마스 하디는 이렇게 한탄했다.

“세상의 일이란 왜 이렇듯 탕아가 순결한 여인을 차지하고 악한 여자가 착한 남자를 빼앗아가는 식으로 어긋나야만 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두고 철학자들이 수천 년에 걸쳐 연구해왔으나 명쾌한 해답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월 하순의 일요일 아침에 테스는 슬로우프 저택을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알렉은 그녀를 붙잡지만 테스는 단호하다. 스스로 생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정조를 잃고 아기를 낳은 그녀를 곱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기마저 죽었을 때 테스는 좌절에 빠진다. 그때 구세주가 등장한다. 에민스터 클래어 목사의 막내아들 에인절(Angel)이다. 천사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에인절은 부모의 바람과 달리 농부가 되려 하고, 테스는 더할 나위없는 농부의 아내였다. 아버지에게 “아내가 될 만한 모든 자격을 갖춘 진실한 여자가 나타났어요. 그것은 운명이거나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말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에인절은 테스가 입을 결혼예복(웨딩드레스)을 보내주었다. 그 옷이 맞는지 입어볼 때 문득 어머니가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한번 실수한 여자에게는 영원히 어울리지 않는 신비한 옷”

첫날 밤, 에인절은 서로의 과오를 고백하고, 그 과오를 용서해주자고 제안한다. 테스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결혼 전에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고백하려던 참이었으므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에인절은 런던에서 한 여자를 만나 이틀 동안 방탕한 생활에 빠졌었다고 말한다. 그 방탕함에는 물론 성행위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테스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토마스 하디 Ⓒ김호경

이미 늦은 사랑에 후회하다 

이 소설은 기승전결이 매우 뚜렷하며,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다양하다. 사회비판, 추리, 종교적 가르침, 세태 묘사도 뛰어나다. 2019년의 기준에서 128년 전에 창작되었다. 1891년은 조선의 고종 28년이며, 독일은 빌헬름 황제, 러시아는 로마노프 왕조,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프랑스는 제3공화국이었으며, 미국은 벤저민 해리슨이 대통령이었다. 조선에서는 일본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공산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다행히 국제 전쟁은 없었다. 당시 서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설 속 테스의 삶이 현실에 어느 정도 바탕을 두었다면 민중의 삶이 어떠했을지 가늠된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왕과 귀족들이 만든 위대한 혹은 실패한 역사를 배울 뿐 실제 민중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한다. 농장에서 일하는 테스의 노동은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일해야 한다. 불과 150년 전 대다수 사람들의 생존법이다.

나아가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착공되고, 에디슨이 등사기를 만들어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고, 교육과 서적 보급이 이루어지던 시절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신분에 얽매여 있었으며, 정조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의 테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가난하고 비참한 삶에서 탈출할 기회가 있었다. 개과천선한 알렉 더빌이 찾아와 가정을 이루자고 여러 번 당부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했다. 브라질로 떠난 에인절을 기다리지 않고 알렉과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면 테스는 겉으로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행복까지는 아니라 해도 삶은 그럭저럭 안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순수했고, 에인절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이 그녀를 처참한 비극으로 내몰았다. 온갖 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에인절은 테스를 찾아 나서지만 이미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가 아니라 “늦었다고 생각되면 정말 늦은 것이다.” 

모든 것을 이겨내는 순수한 사랑의 힘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테스가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옛 도시 윈톤체스터(윈체스터)의 팔각형 탑 위로 7월의 어느 날, 아침 8시가 조금 지났을 때 깃대 위로 검은 깃발이 나부끼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 전에, 테스는 에인절과 함께 도망 다니면서 간곡히 부탁한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날 위해서라도 리자 루우를 돌봐주지 않겠어요?”

리자 루우는 테스의 여동생이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테스는 에인절이 동생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 당부에 에인절은 대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결혼한 사이임에도 단 한번도 성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테스의 죽음 이후 형부와 처제가 어떻게 되었을지 섣불리 예측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테스의 무한한 순진성과 참된 사랑이 모든 고통을 이겼다는 사실이다. [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토마스 하디의 생가 Ⓒ김호경

* 더 넓은 지식을 위한 독서 내비게이션 

1. 하디(Thomas Hardy 1840~1928)는 문학공부를 하지 않고 건축공부를 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테스> 외에 <비운의 주드>가 널리 알려져 있다.

2. 여성의 ‘사랑의 고난’을 다룬 소설은 N. 호손(미국)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1850)가 대표적이다. <테스>보다 40년 먼저 발표되었다.

3. 사랑(방탕함) 때문에 여자가 죽는 소설은 아베 프레보(프랑스)의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 1731), 불행한 사랑을 그린 소설은 콜린 매컬로(호주)의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를 들 수 있다. 가톨릭 신부 랠프와 매기의 사랑 이야기이다.

4.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1857)은 보바리의 아내 에마의 방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가 풍기문란으로 재판까지 받았다.

5. <테스>에는 영국 하층민의 힘겨운 삶이 잘 나타난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L'Assommoir 1877)은 여주인공 제르베즈를 비롯해 애인 랑체, 남편 쿠포와 함께 몰락하는 소설이다. 낭만적인 제목과 달리 프랑스 하층민의 처참한 삶을 묘사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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