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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차 지분매각 소식을 보고
권혁찬 | 승인 2019.11.29 09:30

[논객단상=권혁찬]

“삼성그룹이 르노삼성자동차와 맺은 브랜드 이용계약을 해지한다. 내년 8월부터다. 르노삼성 2대 주주인 삼성카드도 르노와 합작관계를 맺으며 보유해온 르노삼성지분(19.9 %)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르노삼성은 브랜드 사용계약 해지에 대비해 올 상반기 부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SM5를 단종한 데 이어 지난 9 월 SM3와 SM7 생산도 중단했다. 대신 르노그룹의 해외공장에서 생산한 클리오와 마스터 차량 판매를 늘리고 있다...”(한국경제 11월 14일자 )

삼성이 르노삼성차와의 브랜드 이용계약 해지에 이어 보유지분 매각도 추진한다는 보도입니다.  “아직 확정된 게 업다”는 삼성 측 입장이지만 내용대로라면 ‘삼성자동차’는 자동차사업 진출 20여년 만에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삼성 자동차사업은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의 숙원사업.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열정이 더해지면서 그룹차원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 걸었던 사안입니다.

최근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 진출 당시 일화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1994년) 어느날 이건희 회장이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나는 이 회장과 이런 저런 공식 행사장에서 몇번 만난 적은 있었으나 길게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나는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이 회장에게 직접 전달해 이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석자없이 진행된 만찬에서 이 회장은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계획하게 된 이유를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삼성은 이미 상용차 분야에 진출해 경험이 축적돼있을뿐아니라 전자 · 전기 분야에 기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자동차 산업은 전장품 경쟁에서 이기는 기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따라서 정부가 이 계획을 밀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나는 국내외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삼성이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다면 기존 생산자들과 과열경쟁, 기술자의 경쟁적인 스카우트 등으로 우리 자동차 업계에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있을 거라 보았다. 나는 해외 자동차 산업들도 공급 과잉으로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삼성이 이 분야에 신규로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재고해 달라고 했다. 그날 이 회장과의 저녁 모임은 서로의 견해 차이만을 확인한 셈이었다”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 ‘통상의 길 50년’(매일경제신문사)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의 회고록 중 삼성자동차 진출 관련내용

김 전 장관은 “(이건희 회장과 만난 뒤) 당시 김영삼 대통령(YS)과의 독대에서 삼성이 승용차사업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정리해 설명드렸다. 대통령은 진지하게 듣고 하등의 이의를 달지 않았다. 주무장관 의견대로 하라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삼성자동차 불허방침’은 이내 꺾이고 맙니다. 부산지역 경제활성화(삼성자동차 공장 후보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치권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삼성자동차 사업진출이 '불허’에서 ‘허용’으로 180도 바뀌게 됩니다.

“(김영삼)대통령께 1994년 4월말에 보고한 뒤 6개월 이상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시도에 반대관점을 견지했다. 그런데 11월 30일 예정되었던 그해의 ‘수출의 날’을 전후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될 일이 발생했다. 그해 10월 박재윤 경제수석이 재무장관에 임명되고 그 자리에 한이헌 전 경제기획원 차관이 임명된 후 얼마 뒤다. ‘수출의 날’ 바로 전날 한 수석이 전화를 걸어 대통령께서 삼성 자동차사업을 허용하라는 지시를 하셨다고 전했다”(김 전장관 회고록)

‘겡제’를 외쳤던 YS 한마디에 상공자원부는 불허방침을 접고 삼성이 제출한 ‘닛산으로부터의 기술이전신청서’를 국산화율 제고와 타사 경쟁인력 스카우트 금지 등 몇가지 조건을 붙여 허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삼성.  그뒤 자동차사업에 4조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사업을 접어야 했고, 결국 경영권을 프랑스 르노에 넘깁니다.

“외환위기가 없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 알 수 없지만,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시도는 기업 스스로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를 본 시도였다. 나는 내 소신에 반해 견해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에 지금까지도 애석함을 갖고 있다”(김 전 장관 회고록)

김철수 전 상공장관은 회고록 표지

당시 김 전 장관의 고언(苦言)을 받아들여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사업을 고집스레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한 일이지만,

또 사업이란 게 확률게임과도 같은 것이긴 하지만 아쉬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올들어 국내 자동차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연간 400만대 생산을 밑돌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GM 창원공장의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사태를 맞는 등 자동차업계는 살얼음판입니다. 르노삼성차도 삼성이란 이름마저 떼어 내 로열티라도 절약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성공을 자신했던 ‘삼성자동차’.

이제 영욕의 세월을 접고 삼성그룹사(史)나 대한민국 산업정책사(史)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일만 남았습니다.

 

권혁찬  khc71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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