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예지의 생각으로 바라보기]

‘우리오파(于里烏播)/개귀여어(凱歸蠡魚)/하고풍거(河鼓風去)/삭다해라(削多海蘿)’
‘언니는 경마장 출입금지라면서요? 언니 미모에 말이 안 나와서....’

위와 같은 ‘주접’이 밈(meme)이 되어 퍼져나가고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유심히 둘러보면 연예인·유명인·인플루언서들의 sns나 유튜브 댓글창에 주르륵 달린 ‘주접 댓글’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너무 오바스러운 건 아닌가 싶다가도, 다양한 언어유희와 재치들을 보고 있자면 결국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이런 댓글들은 악플을 정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하며, 셀럽들이 직접 반응을 보이거나 직접 읽어보며 소통하기도 한다.

왜 주접이 유행할까? 우선, sns 발달로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지고 상시적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팬과 유명인의 위치가 좀 더 수평적으로 변모한 것이 그 원인이다.

두 번째로는 ‘팬슈머’라는 단어에 주목해 볼 수 있다. 팬(fan)과 컨슈머(consumer)를 더한 이 2020년 트렌드 키워드의 가장 대표적 예시로는, 팬들이 투표와 홍보 등의 지원을 통해 오디션 프로에 나온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것이 있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한 소비가, 관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렇게 팬덤 문화에서 팬의 이미지가 일종의 양육자, 투자자로 변모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주접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워도 막상 받으면 미소가 지어지는 주접. 주접은 유명인이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주접을 받으면서 자라왔다. 바로 부모님의 ‘주접’이다. 몇 개의 단어만 뱉어내도 “우리 딸 천재인가 봐. 어떡해?”라며 호들갑을 떨고, 반장 선거에 당선되면 전화를 돌리며 동네방네 소식을 알리던 부모님의 주접. 어렸을 때는 ‘아니, 왜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식을 과하게 자랑하시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혼자 올라와 살며 마주한 것은, 항상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직접 차려 입고 어색히 뽐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얕은 관계들과 뭐든지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신기하게도 부모님의 주접이 어릴 때 마셨던 딸기 맛 감기약처럼 간간이 그리워지곤 했다.

Ⓒ픽사베이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진주가 메인 작가가 되어 개인 작업실을 얻게 되자, 진주의 어머님은 아는 사람들을 죄다 불러 모아 요리를 차리고 파티를 연다. 진주는 그런 엄마의 주접에 잠시 놀라지만, 바로 체념하고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든다. 옛날 같았으면 저 어머님이 정말 극성이라며 눈살을 찌푸렸을 텐데, 주접이라는 단어에 대입해 생각하니 마냥 재밌고 귀여워 보이시기만 했다.

아는 지인과도 각자 부모님의 주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인이 배우로 출연하는 웹드라마가 7시에 유튜브에 업로드 되는데, 그걸 텔레비전 방영처럼 생각하시곤 주위 어른들께 “꼭, 7시 맞춰서 들어가서 봐야해!”라며 연락을 돌리셨다고 한다. 부모님들의 주접은 모두 비슷한가보다.

그래서 “예지가 쓴 책 제대로 다시 출판하면, 아빠 차에 플랜카드 걸고 전국 일주하면서 홍보해야겠다!”라며 껄껄 웃는 아빠의 확신에 찬 주접이 이제는 부끄럽기 보단, 웃음이 난다.

그렇게 가족의 주접은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 뿐 아니다. 그 밖의 인간관계에서도 주접은 풍요를 가져다준다. 사실, 느슨한 연대 관계 속에서도 주접은 빛을 발한다.

책 [라이프 트렌드 2020-느슨한 연대]에서는 ‘느슨한 연대’를, 도래할 2020년의 관계 키워드로 제시한다. 기존의 관계가 가진 문제의 대안으로 등장해 ‘따로 또 같이’가 원활해진 관계라고 책은 설명한다. 일종의 개인주의적 관계 맺기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같이 있으면서도 따로 있는 느슨한 관계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접착제가 바로 주접이라고 생각한다.

‘안 본지 오래됐는데 진짜 보고 싶다!’
‘우리 좋아하는 음악 진짜 비슷하다. 잘 맞는 것 같아.’
‘글 너무 잘 읽고 있어요!’
이렇게 먼저 나아가는 표현으로, 잠시 늘어진 관계의 끈을 한 번씩 잡아당길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 사회에서도 기름칠이 되어주는 주접. 그러니까 이젠 우리가 먼저 주접을 떨어보는 건 어떨까?
아빠에게 “아빠, 등산가서 찍은 사진 영화배우같이 나왔어요!”
연인에게는 “어떻게, 보면 볼수록 예쁜 거야? 오늘도 진짜 예쁘다.”
보고싶은 지인에게는 “자주 못 만나도, 항상 너 생각하는 거 알지? 올해 가기 전에는 꼭 한 번 보자!”라며 말이다.

  곽예지

   글을 쓰는 사람 

   독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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