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스몰 웨딩’의 화목과 결속...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더해지다

부모 세대는 뽀대나게 자식을 결혼시키고 싶다? 

아들이 결혼하겠다면서 양가 친족만 초청한 가운데 조촐하게 식을 올리겠다고 한다. 며느리 될 아이와도 그렇게 상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일단 고마웠던 것은, 하객들을 왁자하게 끌어모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장에 그럴듯한 인물들의 축화 화환이 들어오고 하객들이 북적거려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럴 힘이 없다. 옛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과도 제한된 일부만 제외하고는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발이 넓은 편도 못되지만, 70대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뽀대나게 예식을 치르긴 커녕 하객을 채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부지런히 친구나 친인척 자녀 혼례식에 참석했으나 반드시 되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되돌려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속물적이라고 여기지만, 품앗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청첩장을 보낼 때, 진정으로 축하해줄 사람들이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필자도 세금고지서 받는 느낌이었는데, 그들이라고 다를 것인가. 그래서 아들에게 마음 속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섭섭한 것은, 신부를 맞아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하객들에게 자랑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본전’ 때문이다. 

하객을 안받는 결혼식, ‘본전’을 생각나게 하다 

필자는 호화로운 예식장을 빌려서 하객들을 많이 불러모아 폼나게 예식을 치르는 풍습에 젖은 세대다. 그렇게 해야만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아들은 자기 식으로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한다. 허례허식을 접고 결혼문화를 개선해나가겠다는 그 실천력이 놀라웠다. 사실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의 몫이지, 그가 짊어질 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거부하고 양가 부모와 형제들만 참석한 가운데 낭비없이 조촐하게 혼례를 치르겠다고 한다.

인간은 속물적 품성도 갖고 있는지라 필자는 당장 ‘본전’ 생각을 했다. 그동안 친구들, 친인척 혼례식에 나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결혼 성수기엔 하루 두 군데를 뛴 적도 있다. 그러한 정성은 내 자식 혼사가 있을 때를 대비해 일종의 보험을 든 성격이었음은 물론이다. 진정한 축하는 밑으로 숨고, 일종의 ‘거래’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빚을 지고 시작하는 결혼식이다. 받으면 갚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친구 중 하나가 “나는 그의 아이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그는 내 아이 결혼식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고 불쾌해했다. 

장부에 올려서 일일이 체크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에겐 기억력이라는 회로가 있어서 품앗이 대상을 얼마든지 머리로 체크할 수 있다. 그래서 받아먹고도 되갚지 않은 친구가 괘씸해 보이는 것이다. 결국 친구 사이의 우정에도 금이 갈 수 있다. 그 친구가 친구의 자녀 결혼 소식을 모를 수도 있고, 불가피한 다른 사정이 있어서 못갈 수도 있다. 또 설사 알았더라도 회피하는 비양심도 있을 수 있다. 필자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여하간에 그것은 결례지만, 그것을 계산기 두드리듯 재는 모양새는 참 서글프다. 

Ⓒ픽사베이

패물도 예단도 없이 아들의 삼촌이 진행 맡아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차분히 혼례 준비를 했다. 신부측에서도 신랑측 의사를 따르겠다고 해서 양가 부모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둘이서 장소를 물색하고, 진행 콘티를 짰다. 결혼식 장소는 강남 수서역 근방의 한식집 필경재의 20인실을 빌렸다. 80인을 수용하는 방도 있다고 했으나 양가 10명씩 인원을 제한하니 20인실로 정했다. 식사는 1인당 54,000원짜리로 했으며, 3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아이는 결혼 패물도, 혼사 예단도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나 며느리에게 섭섭하다고 해서 아이 엄마가 옛날 필자에게서 선물받은 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로 하고,아이의 누나가 귀걸이를 마련해주기로 해서 며느리 마음이 조금은 허전하지 않도록 했다.

이윽고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진행은 미리 약속한대로 주례 없이 아이의 작은 아버지가 맡았다. 하객은 신랑 측에서 필자 부부와 딸 부부와 손자, 남동생, 여동생 부부 등 10명이 참석했다. 신부 집에서는 며느리 부모님과 외삼촌 부부, 두 언니 부부와 아이 등 10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필자 쪽에서는 큰 누님의 아들 등이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아이 외가 쪽 사람들도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극구 만류했다. 참석 범위를 기준없이 하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누구는 참석하고, 누구는 빼는 결과를 낳아 참석하지 못한 친지들이 섭섭해할까봐 철저하게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막상 결혼식을 치르니 이렇게 따뜻하고 뜻깊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없었다. 시간 단위로 재는 장바닥 같은 예식장의 결혼 풍속에만 젖어있던 필자로서는 이런 감동적인 결혼식도 다 있구나 해서 아들과 며느리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신세대의 건강성은 낡은 어른 세대에 대한 질책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신랑의 작은 아버지의 진행 식순에 따라 신랑신부가 실내 한 켠에 서있다가 나란히 입장하고, 결혼 서약과 약속을 다짐했다. 

-저는 신부 류수정을 아내로 맞이하여 영원한 반려자로서 양가 부모님을 공경하며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가꾸어 행복하고 모범적인 부부가 되도록 남편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저도 신랑 이동욱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서로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고, 사랑을 더욱 크게 키워나가며, 기쁨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도록 아내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이어서 작은 아버지가 주례사 겸 축시를 낭독했다. 내용이 좋아서 한번 더 낭독하기를 요청해 그는 두 번 읽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난로가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아파치 인디안의 결혼 축시 

뒤이어 양측 아버지들이 덕담을 했다. 세 딸 중 막내를 마지막 출가시키는 신부 어머니는 사이사이 눈물을 훔쳤지만, 아버지가 직접 써서 낭독한 힘찬 축하의 말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 듯했다. 

신부 아버지 “사랑 가운데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아라” 

신부 아버지는 신랑 신부에게 “건강한 신세대 정신을 높이 산다”면서, 딸에게는 “신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인생은 사랑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소의 품성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격려 말씀을 하셨다. 

필자는 훌륭한 따님을 며느리로 보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고, 친정 아버지의 훌륭한 말씀으로 축하 인사를 대신한다면서, 다만 한가지 말을 간곡히 당부했다. 

“인생 최후의 승리자는 장수자다. 적어도 110살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자기가 세운 뜻을 완성할 수 있다.” 

덕담이 끝난 뒤 식사를 하면서 자녀의 성장기, 아이들이 잘 살아갈 지혜로운 말씀들, 양가 집안 이야기들이 오갔다. 양가가 그지없이 다정다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온돌방처럼 난방이 잘된 실내는 한 겨울의 추위를 녹여내고, 그런 가운데 우애와 단합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진정한 결혼식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날 필자는 혼주면서도 근엄함을 잊고 결혼식 장면을 휴대폰에 담느라 자주 자리를 떴다. 소중한 장면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명색 혼주의 잦은 이석에도 모두 양해가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반 예식장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만큼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했다. 

결혼식 행사비는 120만원 

식사는 코스 요리로 제공되었다. 떡갈비와 입맛을 돋우는 간장게장, 소고기 잡채, 돼지고기 삼합, 여러 색깔의 전, 월과채와 탕평채, 보쌈김치, 상쾌한 샐러드, 디저트와 과일, 밥과 깔끔한 된장국,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품위있는 식단으로 짜여졌다. 무엇보다 양이 풍부해서 넉넉하게 먹었다.

필경재는 예쁜 정원이 인상적이다. 전통 한옥과 품격있는 소나무가 들어선 정원이 겨울철이라도 그윽한 정취를 풍겨주었다. 세종대왕의 5대 후손이 건립했다는 이 한옥은 전통 사대부 집으로서 서울시문화재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안국동 인근에 소재한 대원군의 운현궁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넓은 정원과 노송의 자태가 운현궁과 다른 운치를 더해준다.

이날 결혼식 비용은 식사대와 주류비를 포함해 120만 4000원이 나왔다. 신랑 신부가 미리 준비한 케익과 꽃장식, 예복 대여비, 메이크업 비용을 포함하면 모두 200만원 정도 들지 않았나 싶다(사진촬영비 제외). 

날씨가 추운지라 야외 기념촬영에 며느리가 힘들었다. 반팔 드레스를 입고 영하 10도가 오르내리는 뜰에서 사진촬영을 했으니 감기 걸릴 것이 몹시 우려되었다. 행복하고 기쁜 날이어선지 며느리는 목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대수롭지 않게 그때그때 사진촬영에 임했다. 역시 생애 최고의 기쁜 날은 추위도 녹여내는 모양이다. 

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곱절이 되다 

요즘은 개성시대인만큼 결혼풍속도가 다양하다. 궁전 같은 호텔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온 하객들이 축하해주는 억대의 웨딩이 있는가 하면, 2백만원 안팎의 스몰 웨딩이 있다. 구청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공원에서 올리는 결혼식도 있다. 이제는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기 뜻과 취향과 가치에 따라 결혼식을 선택할 수 있다. 어른 세대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젊은이에게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시적인 결혼문화가 여전히 대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거품을 빼내자고 하지만 부모의 스펙과 부의 과시로 하는 결혼식이 대세다. 신랑신부 위주가 아니라 부모님 위주 행사가 돼버렸다. 신랑신부를 위한 결혼인데, 하객은 신랑신부를 알 생각도 없고, 신랑신부 역시 그런 존재를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하객들은 신랑신부 이름도 모른 채 축의금과 식권을 상품권처럼 교환해 바글거리는 식당에 가서 독립운동 나가는 사람들처럼 후다닥 밥을 먹고 나온다. 이런 결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혼식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인생을 새롭게 꾸려가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생각을 바꿈, 행복을 가꿈'이란 결혼 슬로건을 본 적이 있다. 요란한 허례허식에 젖어있는 생각을 바꾸니 진정한 행복이 가꾸어진다는 소박한 생활철학이다. 

필자는 아들의 결혼식을 통해 가족끼리 치르는 결혼식이 참으로 뜻깊다는 것을 느꼈다. 결혼식이 ‘거래’가 아니라 양가의 결속과 우애를 다지는 자리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들과 며느리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오피니언타임스=이계홍]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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