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의 달빛생각]

[오피니언타임스=이루나] 대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 A와 B가 있다.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그저 같은 학과에 같은 동아리에 참여하게 된 우연이 겹친 인연이다. 사범대라는 특성상 남자 수도 적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뚜렷하지 않았다. 교사라는 장밋빛 꿈은 임용고시라는 벽 앞에 완고했고,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쌓아야 할 스펙은 가보지 않은 험난한 길이었다. 그저 물 위에 뜬 튜브처럼 부유하며, 4년의 커리큘럼을 차곡차곡 지워나가고 있었다.

A는 인기가 많고 매력이 넘쳤다. 고등학교부터 힙합에 빠져 랩도 잘하고 주변 동료들과의 친화력도 좋았다. 요즘 말로 전형적인 인싸였다. B는 키가 크고 잘생겼다. 고등학교 때 농구 선수도 했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B는 학생회장도 할 만큼 리더십도 있었다. A와 B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고 시종 유쾌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드는 플랫폼 같았다. 나도 모여든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어느 한가한 여름 방학, 하릴없던 셋이 텅 빈 학과 사무실에 모였다. 내가 대본을 쓰고, A는 촬영과 편집을 했고, B는 연기를 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UCC(User Creative Contents) 공모전이 목적이었다. 셋이 모여 열심히 영상을 찍고 다듬었다. 대학교, 공공기관 등 여러 공모전에 응모했고, 제법 좋은 성과도 거뒀다. 아침 방송이긴 하지만 잠깐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요즘 전문 유튜버들 영상에 비하면 부끄러운 습작 수준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청춘은 한정된 자산이다. 아낌없이 시간을 쓰다 보니 어느새 재고가 바닥났고, 졸업이 다가왔다.

Ⓒ픽사베이

B는 ROTC로 잠시 유예기간을 가졌고, A와 나는 노량진의 수많은 고시생들 중 하나로 다시 만났다. 고시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동전 노래방에서 악을 질렀다. 청춘의 생기와 낭만은 깡그리 사라지고, 무거운 수험 서적과 취업의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수십 대 일이라는 비현실적인 경쟁률 앞에 준비 없이 던져진 우리는 여지 없이 실패를 맛봤다. 조바심이 났고 나와 A는 교사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취직을 했다.

B가 말년 휴가에 나왔을 때 셋은 여행을 떠났다. 마침 A가 새로 차를 샀을 때였고 나도 적게나마 월급이 들어올 때였다. 안면도, 인천, 속초, 횡성 등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마냥 즐거웠다. 맛난 음식을 먹고 바닷가에 뛰어들며 마지막 청춘을 즐겼다. 셋 다 막연한 청춘 여행이 마지막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B는 전역 후 노량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취직에 성공했다.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다. 사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지만, 나는 딸, B는 아들, A는 미니 푸들 2마리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처럼 막연하게 정처 없이 만나기에는 서로의 기회비용이 커졌다. 가끔 안부나 전하던 채팅창에서는 비트코인, 집값, 육아, 정치 얘기가 나뒹군다. 그렇게 우리의 청춘은 채팅창 속 텍스트와 이모티콘으로 오그라들었다.

최근 싸이월드 폐쇄 건으로 말이 많았다. 각자의 싸이월드에는 10년 전 청춘들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서로 가지고 있던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며 한바탕 웃어댔다.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의 시간들이 10년 전 플랫폼에는 선명히 살아 있었다. 우리가 시대를 한참 앞서갔다며 자화자찬하고, 이젠 유튜브를 같이 해보자는 농담도 해본다. 여전히 셋은 다르다. 앞으로도 그렇게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이제 40대를 바라보지만 세 청춘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서로의 시간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갈무리되길 바라본다. 올해가 가기 전 셋이 만나 술 한잔 해야겠다.  

이루나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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