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2020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숫자인 줄 알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흐를 것이라는 조언이 서른이 넘어서야 실감이 난다.

2020년을 앞두고 한 광고 카피가 눈에 띄었다. 현대자동차에서 그랜저를 위해 만든 광고 카피다.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된 광고는 강렬한 문구로 마무리된다.
“2020 성공에 대하여”

성공한 사람들은 그랜저를 타야 한다. 그랜저는 성공의 척도다. 광고의 주제이자 요점이 그렇다. 자각 없이 보다 문득 서러워졌다. 성공하면 진짜 그랜저를 타야 하나? 좋은 차를 타는 것이 성공인가? 멋지고 크고 비싼 차를 타는 것이 성공의 목적이란 말인가! 혼자서 열받다가 왜 이렇게 기분 나쁜지 반문했다. 실상은 내 안에 있는 시기와 질투, 열등감의 발로였다.

Ⓒ픽사베이

성공을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공이란 단어에 집착해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질문 대신 광고 내용과 같이 무작정 ‘성공’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것이 부든, 명예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타인의 시선에서 성공한 인간이고 싶었다. 그런 꿈을 꾸는 이들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10년 전 이제 막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군인의 신분을 벗어날 때였다. 민간인이 될 날을 단 이틀만을 남겨 둔 열혈 청춘들에게 어느 날 한 코칭 강사가 물었다.

“여러분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모른다. 민간인이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에게 그 물음은 지나치게 현학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천박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몇몇 웅성거림이 있었다. “돈 많이 버는 거요”, “좋은 직장 취업이요”, “강남에 집 사는 것이요”. 혹 “그랜저를 타는 것”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다들 저마다 생각하는 성공에 대한 단상이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사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다들 성공하고 싶으시죠?”
3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강당을 떠나가라 “예”라고 외쳤다.
“그러면 어떡해야 성공하는 것일까요?”

10초 전과 달리 적막만이 강당 안에 감돌았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를 숙였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누군가 불편한 침묵을 끝내주길 바라고 있었다. 시작도 끝도 강사의 시간이었다.
“괜찮아요. 저도 사실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지 몰라요”
“우”하는 야유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강사는 노련했다. 이미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다는 듯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래도 성공의 방향성이 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분명 강당에 있던 나와 내 군대 동기들의 귀가 쫑긋하고 솟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지막이 무언가 대단한 비법이라도 전수하듯 강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직장을 갖는 것. 꿈을 이루는 것, 모두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사히 2년간의 시간을 채우고 이곳을 나가는 것 또한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일지도 모르죠. 일단 여러분은 그 힘들다는 국방의 의무를 마쳤으니 분명 성공할 재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직 미래가 창창하고 젊은 청춘들이니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 이제 내일 모레면 이곳을 떠나 저마다 대학이든, 사회든, 어디에든 갈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성공하기 위해 꼭 알아야 비법이자 방향성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강사의 장광설은 이후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요점은 간단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최고일 수 있는 ‘제일’인 일을 찾는 것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분야에서 ‘유일’이 되라는 것이다. 제일과 유일이 되는 것, 무엇을 선택하든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이 성공이자 성공의 비결,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2030 성공에 대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랜저는 브랜드다. 1986년 처음 출시된 이래 네이밍이 바뀌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 살아남기만 했는가? 아니다. 2~3년마다 외형과 내장재를 바꿨고 기술 혁신을 거듭했다. 그럼으로써 성공에 대해 말할 자격까지 갖췄다. 몸값도 비싸다. 그랜저와 같은 해 태어난 이들의 평균 연봉보다 비싼 몸이다. 그 뿐인가? 오만한 광고 문구에서 찾아볼 수 있듯 고급스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기아의 K7, 르노 삼성의 SM7, 쉐보레의 임팔라 등 타 자동차 제조사에서 나오는 같은 등급의 차량들은 결코 그랜저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그랜저는 강사의 조언과 같이 ‘제일’이자 ‘유일’한 차량이 됐다. 그랜저는 그렇게 성공의 상징, 부의 대명사가 됐다. 그래서 그랜저를 타야 한다. 이것이 현대차의 논리다. 불쾌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분명 옳은 말이다. 2030 청년 세대도 그랜저와 같이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외형도 바꾸고, 내면도 가꿔야 한다.

2030 청년들이여, 우리 모두 그랜저가 되자. 그랜저를 타자는 뜻이 아니다. 86년생 그랜저와 같이 제일이 되고 유일이 되자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들 자신만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이 세상에서 자신만의 성공을 거둔 2020년 한국의 원더키디가 되자.

그렇게 글을 끝맺으려 했다. 쓰다 보니 마음이 어려워졌다. 한참을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쳤다. 질문이 시작됐다. 진짜? 진짜 글을 이렇게 끝맺고 싶은 거야? 백짓장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성공에 집착해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10년의 시간을 넋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래 지났을까. 누군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건넸다.

바로 1990년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며 우주를 꿈꾸던 코흘리개, 2000년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몽상가, 2010년 강당에 앉아 혼자 질문에 휩싸여 있던 군인이었다. 그들 앞에서 2020년의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기 자신이 브랜드가 돼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 어떤 이력을 남기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숙명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이 세계에서 온전히 성공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정식이라 단정 짓고 타인에게 설파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치 광고에서 그랜저를 말하던 그 방식 그대로 말이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됐다고 착각하며 성공에 대해 말하려는 멍청이가 다름 아닌 여기에 있었다.

창대하게 시작해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미약해졌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으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인생이 영원히 미생인 듯, 성공 또한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완의 숙제일 테니까. 

 방제일

 씁니다. 제 일처럼, 제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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