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신혼집 정보를 얻으려고 부동산 단톡방에 들어와 있다. 관심 있는 세 지역의 커뮤니티인데, 각각 1000명 정도의 대규모다. 지역 정보, 부동산 정책 기사, 심지어 맛집 추천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한 시간 정도 관심을 끄고 있으면 수백 개가 넘는 톡이 쌓여 있다. 재야의 고수들이 많아서, 처음 집을 구하는 나 같은 초짜들에게 유용한 조언을 주기도 한다.

어느 저녁에도 단톡방을 보고 있었는데, 링크 하나가 공유됐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기사였다. 그걸 보고 누가 이렇게 말했다. "청담동엔 악재네요."

Ⓒ픽사베이

자본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은 인간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듯하다. 아무리 부동산에 온 관심을 쏟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라지만, 고통 속에서 세상을 등진 누군가의 비보에 집값 떨어지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니.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는 노인들은 빨리 죽어야 한다거나, 멀쩡한 빌라들을 싹 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를 쉽게도 했다. 어느 초등학교는 임대주택 애들이 많아서 수준이 떨어진다느니, 장애인 복지시설이 들어오면 민도가 안 좋아지니까 결사반대 현수막을 걸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예사였다.

버스노선 신설이 늦어진다는 성토와 함께, 구청 공무원의 내선번호가 공유되기도 했다. 공무원이라는 족속들은 괴롭혀야만 일을 한다며, 담당자가 퇴사할 때까지 민원을 넣자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에 이게 인간인가, 괴물인가 싶었다.

특정 정치색을 강요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모든 단톡방은 나라가 공산주의화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우국지사들로 넘쳐났다. 어떤 방은 운영규칙에 "종북좌파 강퇴"라는 규정을 넣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충원에서 헌화 드리던 박정희 전 대통령님의 모습이 그립다는 소회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온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한 마음이 됐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며.

자중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있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일관됐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다수의 비이성적인 목소리에 브레이크를 걸던 이들은 하나 둘 제 발로 절을 떠났다. 단톡방은 더욱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하고, 배제와 차별,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오고 갔다.

집주인이 집값 앞에 초연하기란 어렵다. 영혼을 끌어 모아 첫 집을 장만했든, 다주택자든 단위 자체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수의 목소리가 거세되고 다수의 사고방식이 극단화되면, 옳고 그름은 오직 집값이 오르느냐 떨어지느냐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공간이 된다.

이젠 부동산에도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처럼, 강남3구 마용성과 같은 서열이 떠돈다. 요즘 신축 아파트는 외부인에 대한 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급 단지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들만의 커뮤니티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취미를 공유한다. 그러니 초등학생들이 임대주택에 사는 친구를 보며 '휴거(휴먼시아 거지)'니 '엘사(LH 사는 사람)'니 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다.

지금은 부동산 단톡방을 모두 나온 상태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온건한 커뮤니티도 있었지만, 결국 그 기저를 관통하는 가치관에 공감하지 못해서다. 집은 투자가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날 보며 등기 한 번 못 쳐본 무주택 폭락이가 비참한 처지를 정당화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자본을 좇는 처지이나, 최소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타인의 삶을 도구화하는 사람은 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그 목적을 이루었을까. 결국엔 자본의 비정한 얼굴을 닮아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이성적인 집단행동으로 타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된 건 아닐까.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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