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 인사이트]

[오피니언타임스=권오용] 김우중 회장의 영결식에 갔다. 장병주 세계경영연구회장의 추도사를 듣다가 울컥했다. “회장님, 외국 가실 땐 놀러도 가세요, 일하러만 하러 가시지 말고요” 그러면서 “남들은 다 그럽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놀러 갔을 때 김우중 회장은 일하러 갔었다. 미안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가을, 전경련 출입 기자단과 함께 폴란드에 갔다. 대우가 인수한 자동차 공장 FSO가 얼마나 잘되고 있는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도착한 날 오후에 공장에서 브리핑을 받고 있는데 김우중 회장이 나를 불렀다. 복도 구석에서 속사포같이 몇 마디 주고 받았다. “기자들이 공장을 봤나?”, “네, 좋아하던데요”, “공장이야 그렇지만 다른 곳도 봤나?”, “특별한 곳은 없습니다”, “그러면 기사가 모자라잖아. 내일 폴란드 대통령이나 만나게 해줄까?”, “네?”

대통령이라니, 그것도 다음 날 오전에.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전부는 안 되고 기자들 중 다섯 명이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왔다. 그는 이렇게 일했다. 기자들은 한국을 위해 쓸 거리를 찾았다고 좋아했다. 솔직히 대우 얘기만 썼으면 청부 기사로 폄하될 뻔했을 텐데 대통령의 반응을 덧붙이니 나라의 기사가 됐다. 기자들도 좋고 우리나라에도 좋았다. 결과적으로 대우는 득을 봤을 것이지만 기사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나라를 위해 일했을 텐데도 대우는 나서지 않았다. 김우중 회장은 그렇게 일했다.

아프리카에 자주 갈 때 어떤 기준으로 사업을 하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인구 12억 명에 면적이 한반도의 150배(3,022만 평방km)나 되는 광활한 대륙이 순식간에 셋으로 단순하게 쪼개졌다. 돈이 많은 곳, 리비아였다. 원유가 생산된다. 인구가 많은 나라, 나이지리아였다. 인구 2억 명이다. 마지막으로 땅이 넓은 나라, 수단이었다. 돈이 많고, 사람이 많고, 땅이 넓으니 자원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세 곳을 거점으로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다.

머리가 맑아졌다. 검은 대륙이 아니라 노다지 대륙으로 보였다. 그 나라들이 모두 선망하는 곳이 한국이었다. 못 살았는데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넓은데 돈이 없는 수단의 대통령을 만나서는 “당신네 나라에 한국을 지어주겠다”라고 했다. 돈 준다 얘기는 안 했다. 그랬더니 몇 달을 끌어오던 프로젝트가 바로 재가가 났다고 했다.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한국은 수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으니 외교도 이런 외교가 없다. 진정한 애국의 길을 보여줬다.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돈을 벌었다. ‘장사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라는 길을 보여줬다.

그는 일하고 또 일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펼치니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무슨 행사를 주재하는 사진이 실렸다. 오늘은 편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뒤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김우중 회장님이 11시에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자고 그러시네요”, “아니 리비아 계시던데?”, “행사 끝나고 바로 비행기 타셨대요” 

입이 벌어졌다.

토요일 오후 업무보고가 있었다. 오후 10시경 회의가 끝나 힐튼호텔 로비 바에서 마침 중계되던 축구 경기를 보고 나왔다. 11시 반경? 그런데 김 회장 수행비서가 로비에 서 있었다. “회장님은요?”, “아직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알고 보니 오후 10시에 다른 회의가 또 시작돼서 곧 끝난다고 했다. 나중에 사석에서 이 얘기를 꺼내며 “이래가지고 언제 쉬세요?” 하고 물었더니 “짬나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야”하면서 또 일거리를 찾는 표정이었다. 그가 이렇게 일하고 또 일한 덕분에 우리는 초근목피를 먹던 시절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영결식장에 고인의 생전 모습이 육성과 함께 떴다. “나중에 김우중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일은 열심히 했다. 이런 평가만 나와도 좋겠어요” 그는 이 말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또 한 번 눈물이 나온 순간이었다.

가슴 아픈 얘기도 들었다. 대우 그룹의 사령탑인 기조실에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항공사고만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단다. 사고라는 게 주로 후진국이나 오지에서 많이 나는데 사고가 나면 꼭 대우 직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현장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역으로는 그만큼 대우 직원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편안한 주재원 생활을 뒤로 하고, 겉으로만 대기업 직원이네 했지만 실제는 보따리 장사였던 셈이다. 실제로 대우는 아프리카 근무를 해야 선진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먼저 가야 회사가 발전하고 그 돈으로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비화를 모아 몇 년 전 “가장 먼저, 가장 멀리”란 제목의 책을 낸 적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대우인들의 애환을 이만큼 잘 얘기한 책은 없다고 느꼈다. 제목 그 자체가 대우의 모든 것이었다.

몇 년 전 하노이에서 김우중 회장을 만나 가장 기억나는 곳이 어디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붉은 흙이 보고 싶어, 뜨거운 공기 맡으며.”  비록 은퇴했지만 그의 가슴에는 이글거리는 열정이 있었다. 요새 젊은이들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자 “우리가 언제 젊은이들한테 기회라도 줘 봤냐고요”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눈빛이 빛났다. 그는 가슴속의 열정을 모아 젊은이를 위한 기회를 만들었다. 남들이 말의 성찬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발로 뛰었다. 청년기업가 양성 프로그램(GYBM)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렇게 밖으로 나간 한국의 젊은이가 천 명이 넘는다. 그들은 김우중 회장의 희망대로 다음 세대를 위한 가교를 쌓을 것이다. 그들이 개척한 경제 영토는 한국을 먹여 살리고 김우중 신화를 세계 곳곳에 재현해 낼 것이다.

김우중 회장 덕분에 나는 아침, 점심, 저녁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먹는 흔치 않은 경험도 했었다. 아침은 런던, 점심은 룩셈부르크, 저녁은 조금 늦게 루마니아에서. 그때는 그게 뭐 대수냐 싶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세계를 봤고 미래를 만났다. 김우중 회장 시대의 젊은이로 그와 같이 있었다는 것, 그와 같은 스승이 계셨다는 것 하나로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김우중 회장님의 영면을 빈다.

권오용

한국CCO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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