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왔다. 사실 12월이 되면 뭔가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매일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11월이 지났으니 12월이 됐을 뿐이다. 12월이 지나면 다음 달은 13월이 되어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벌써 1935328월 같이 부르기 어려운 달이 되기 때문에 편의상 1월로 넘기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12월 31일이라고 해도 어제와 거의 비슷한 삶을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12와 31이라는 숫자가 1과 1이라는 깔끔한 숫자로 넘어갔을 뿐이지, 사실 뭐, 특별할 것도 없다. 내년 1월로 넘어간다고 해서 회사를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사람들을 싹 갈아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12월이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우리가 팔십까지 산다고 치면 죽을 때까지 대략 29,200일을 살아간다. 나는 우리의 삶이 뭔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이유가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잠이 들면 지금까지 나의 모습을 완전하게 잊어버리고 꿈속을 달리는데 눈을 뜨면 태어나서 어제까지 했던 생각과 내 이름, 내가 처한 상황 등등이 확 기억나서 내가 가야 할 곳에 가서 지금까지의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기억이라는 놈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29,200일을 나라는 인간으로 한계 지은 채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픽사베이

내년에는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2020년은 1월 1일부터 새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시험용 달궤도선을 날릴 예정이라고 한다. 3월 2일이 되면 2006년에 묻었던 야후! 타임캡슐이 개봉되어 그때 사람들이 2020년에 품었던 기대에 실망을 뿌려줄 것이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승리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도쿄에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을 예정이며 일제에 맞섰던 유관순 열사도 순국 100주년을 맞을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열려 저질 국회의원들을 물갈이 할 수도 있고 미국에서는 대선이 치러져 그동안 몇 번이나 세계를 흔들어 놓았던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수도 있다.

여러모로 세계가 뒤바뀔 수도 있는 대망의 해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가 뒤바뀔 2020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과연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는지?

나는 사회에만 나오면 멋지게 살 줄 알았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나는 조바심 덩어리였다. 하루에 4시간만 잤고, 밥 먹는 시간에도 책을 봤으며, 2호선 지하철에서 책을 보다 한 바퀴 더 돌아가는 것은 물론, 걸으면서 책을 보다 전봇대에 헤딩까지 하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나가 실력 발휘를 하고 싶었다. 과장을 조금 붙여서 말하면 나는 사회에 나가기만 하면 스티브 잡스가 되거나 적어도 총리쯤은 할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직장에 갔는데, 내가 해야 하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볼품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위 높은 인간들은 멍청해 보였으며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까지 걸리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통박을 굴리다 불만만 쌓였고, 불만이 관심결여가 되고, 관심결여가 불성실한 태도가 되고, 또 불성실한 태도가 퇴사 욕구가 되는데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왜 저런 인간이 직장에 붙어있지?

직장에 막 들어가서 정신없이 일을 배우다가 슬슬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2, 3년차 직원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저 사람은 이것도 못하면서 어떻게 저 자리에 있지? 저 사람은 왜 나한테만 그러지? 저놈은 중요한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지?

직장 상황의 인간관계를 유치원에서 배운 이론을 토대로 설명하자면, 나랑 노는 아이들은 좋고, 나랑 안 친한 애들은 나쁘다, 이다. 나나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일을 빠르고 철저하게 하는데 쟤들은 왜 저모양이지? 대상이 직장 동료든, 내가 상대하는 고객이든 다 똑같다. 나랑 맞으면 좋은 사람, 나랑 안 맞으면 나쁜 사람. 나쁜 사람들 때문에 매일 매일 살기 힘들다. 지하철을 타면 엉덩이를 스치기도 싫은 수많은 사람들을 견뎌야 하고 차로 가면 교통체증을 견뎌야 한다. 하루 종일 사람에 시달린 후의 퇴근길은 더 힘들다.

행복하게 하루하루 일한 할아버지 91세로 은퇴하다

올해 91세로 은퇴한 맥도날드 최고령 알바생 임갑지씨는 경기도 양주에서 미아사거리까지 17년간 44분이나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90년 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그는 6.25전쟁 때는 직업군인, 그 후로 농협 은행원, 또 은퇴를 하고는 놀이공원 매장을 운영했고, 75세가 되던 2003년부터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75세인 임갑지씨가 한 일은 홀 서비스라고 한다. 테이블 정리하고, 쓰레기 치우고, 컵과 트레이 설거지하고, 시간이 나면 매장 주위를 청소하고, 지하철역 주변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도 자기가 주웠다고 한다. 같이 교육받았던 아주머니는 이 일에 불만을 가지고 곧 그만뒀다.

임갑지씨는 17년 동안 맥도날드에서 홀 서비스를 하며 한 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결근하거나 지각하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빠지지 않았다. 병원 약속 날짜 때문에 부득이 하게 근무 날짜를 바꿔야할 때는 정말 미안해했다고 한다.

임갑지씨는 한 달 동안 일해서 6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으로 기부도 하고, 손자 용돈도 주었다고 한다. 첫 월급은 로터리클럽 소아마비 퇴치 운동에 기부했다. 60만원인 월급에 대한 불만 사항도, 남이 더럽힌 곳을 뒷정리하는 일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우리가 일을 싫어하는 이유는 돈이나 일 자체보다는 우리의 태도 때문이다

내가 공군에서 장교로 일할 때 내가 하는 일은 한없이 하찮아 보였다. 장군들이나 대령들이 하는 일은 중요해 보였고, 내가 그 사람들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데 왜 그네들이 그 자리에 있고, 내가 그 사람들 밑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군대를 나올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병사들이나 부사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은 하찮아 보이고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해 보였다고 한다. 뉴질랜드 국세청에서 에널리스트로 일할 때도 내가 하는 일은 내 능력에 비해 하찮아 보였고, 정책을 만들거나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말만 하고, 실력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퇴직을 결심했고, 퇴직의 원인을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는 뉴질랜드 정부 탓이라고 생각했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나올 때 안 사실이지만 징수과나 서비스 쪽에 있는 직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은 하찮게 보였고 내가 하는 일이 부러웠다고 한다.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직장을 옮겼고, 항상 직장이나 타인에게서 내가 때려치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 1년 이상 놀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연봉을 1억 가까이 받고 나라 재정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도 하찮다고 생각하면 하찮은 거고, 60만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어도 즐겁고 보람 있다고 생각하면 즐겁고 보람이 있는 것이다.

2020년에는 나부터 바뀔 것이다

나는 아직 29,200일 중에 절반인 14,600일도 채 살지 않았다. 왠지 13,000일째쯤 되는 내일을 12,999일째인 어제와 비슷하게 살면 죽을 때까지 남겨진 나머지 16,200일도 지금껏 살아 온 13,000일과 비슷하게 불만만 가지고 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올해가 가기전에 다른 사람이나 일 자체보다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로 결심했고 내 태도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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