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그레이스>라는 책을 읽으며 내게 딱 꽂혔던 문장이 있다. ‘인간이 단정하려면 아무런 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렵다’는 주인공의 발언이다. 가난한 사람이 맨몸으로 단정해지기란 어려우며, 옷을 살 여유와 씻을 수 있는 조건 등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단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원영 작가는 장애인과 같은 ‘실격당한 자’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에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지 나열했다. 예컨대 커피를 한 손으로 잡고 어깨를 펴고 걸어가거나, 지하철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 손잡이를 잡고 두 다리로 서있는 일 등이다.

가난한 자,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품격을 갖추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명박·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던 대한민국 만들기 또한 그들이 정한 범주 내에서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중산층, 혹은 고위층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픽사베이

김원영은 실격당한 자들의 어려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과 같이 살아가며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 역시 ‘배려심’으로 포장한 연기자들이라고 비판한다. 카페에서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자폐 아이에게 무관심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학생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장애인들을 위한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많았다. 주로 4호선과 1호선을 타고 학교와 일을 오가며 지하철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옆에서 술 취한 사람이나 노숙자가 소리를 지르더라도 애써 외면하고 내가 할 일들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무관심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챙기기에는 나조차의 삶도 너무도 팍팍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나면 마음 한켠에서 무언가 자꾸만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지, 법이나 사회제도 안에서 얼마나 얼마나 부당한 대우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는지 새삼 깨달으면서 오는 불편함이다.

돈이나 권력이 없다면 품격있는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비슷하다. 다만 그런 상황들을 모두가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불편하지만, 이런 행위만으로도 우리가 타인을 좀 더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저 방구석에 앉아 기아 난민들의 광고를 보면서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인간적인 도리와 품격이라는 것은 스스로 끊임없이 행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엇을 보고 기준을 잡느냐에 따라 스스로의 품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애인이라서 무조건 ‘실격당한자’는 아니며, 동시에 비장애인이라서 품격 있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동정하며 스스로 ‘나는 인간적이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겉으로는 티 나지 않아도 진실로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때가 더 인간적이다. 

 서은송

제1대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한양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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