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화의 요즘론]

[청년칼럼=허승화] 2020이라는 숫자를 보니 가슴이 벅차다. 만화 <2020 원더 키디>를 보던 세대는 아니지만 만화 주인공들이 우주를 누비던 시점이 2020년이란 건 알고 있다. 내게도 2020은 미래 그 자체였다. 그런데 2020년이 되고 말았다. 영원히 미래일 줄로만 알았던 시점이 현재로 도래한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새해 계획을 부랴부랴 실행할 시기다. 지난해를 돌아보고 올해를 내다보았다.

#2019년

지난해 동안 나의 화두는 단언컨대 먹고사니즘에 관한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나를 벌어 먹여 살려 줄 일자리를 찾는 것, 적어도 세부적 분야를 찾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했다. 몇년간 고민과 망각을 지속한 결과는 보잘 것없다. 원래 하던 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아직은 내가 정신을 덜 차린 것이거나, 어쩌면 나를 더 봐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해가 되기 전까지의 나는 흔히 이십 대가 겪는 고민들(진로, 연애, 결혼)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 살고 있었다. 내 삶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거나, 미래에 대한 얄팍한 기대감, 혹은 불안정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풀기로 귀결되었다. 비참했다.

삶을 바꿨다. 과거의 내가 비참했으니까. 나는 새벽을 덜 살고 낮을 더 살기로 했다. 근 7-8년을 지속한 루틴에서 벗어나 2시 안에는 잠들고 10시 안에는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균형을 잃었던 몸이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몇 달 간의 경과는 좋았다.

그러나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삶이 심리를 근본적으로 낫게 해 주지는 못했다. 겨울이 되니 마음이 또 아프기 시작했다. 세상을 슬프게 하고 나를 분노하게 하는 일들이 무자비하게 터져갔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헷갈리고 현재의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못 견디는 사이 2019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픽사베이

#새해 계획

어떤 미래가 와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오직 삶과 죽음뿐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라는 마하트마 간디 선생의 말처럼 삶은 계획성보다 높은 밀도로 이루어진 어떤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 가수 양준일은 시대를 앞서간 콘셉트와 패션으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가수로서는 실패했던 그가 근 30년 전 자신에게 전한 메시지는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로 와 닿았다. ‘네 뜻대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뤄지게 될 수밖에 없어.’라는 말이다. 2020년의 내가 2009년의 나를 돌아보았을 때 아무 것도 아닌 희망에 매달린 것으로 보이듯이, 2030년의 나는 2020년의 나를 그만큼 우스워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단순한 진리를 순수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아주 머나먼 거리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삶의 매듭은 매우 계획적으로 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20대의 그도, 50대의 그도 전혀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상황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보며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삶은 태도

삶은 우리가 가진 태도에 좌우된다.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 그것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머지는 전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관념은 종종 인간을 지치게 만든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에 둘러싸인 인간도 결국 눈 앞에 놓인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시야에 담지 못한다. 양준일이라는 가수가 뭇사람들에게 준 감명은, 그가 가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삶에 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치 지금보다 훨씬 더 먼 미래에서 미래 보장보험이라도 들고 온 사람처럼 말하는 그에게서, 수없이 많은 날들을 아픔으로 보낸 자만 가질 수 있을 단단함이 느껴진다. 지금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그의 등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바로 그가 가진 삶의 태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단순하고 공평한 관념 속에서 우리는 공평한 권리를 갖고 있다. 바로 죽지 않는 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미래는 언젠가 반드시 도래한다. 마음껏 미래를 상상하되 적당히 과거를 돌아보자. 2020년 현재,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인지 모른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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