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人間失格>

[논객칼럼=김호경]  전진 혹은 중도포기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자신의 탄생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중도에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는 있다. 계속 살더라도 ‘아름답고 신나게’ 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저냥’ 혹은 ‘비참하게’ 살 것인지 선택할 권리도 있다. 그 무엇이든 조건이 따른다. 아름답고 신나게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중도에 포기하려면 극한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이든 쉽지 않다. 만약 아름답게 살고 싶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낳은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사라졌다면, 부모는 있지만 지독히도 가난한 집의 6형제 중 막내였다면, 선천적인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면 이후의 삶이 고달파서 세상을 저주하며 망가지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그 외모가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어 많은 여자들이 꼬인다는 이유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더더구나 그 집안이 부자이고 명성 높은 가문이라면!

요조는 의원(議員)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지닌 집안이며 하인들도 있고, 아버지의 위신은 대단하다. 평범한 성격을 지녔다면 -부질없는 말이지만-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일해서 아버지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련만...

그의 인생은 세 장의 사진에 잘 요약되어 있다.

첫 번째 사진은 10살 전후에 찍은 사진이다.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갸웃한 채 흉하게 웃고 있다. 사진을 처음으로 보는 사람은 송충이를 털어내듯 팽개칠 정도의 불쾌한 얼굴이다. 두 번째 사진은 고등학생(혹은 대학생)의 얼굴이다. 갑자기 엄청난 미남으로 변해 있음에도 괴기스러운 섬뜩함이 든다. 세 번째 사진은 언제, 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이다. 분명 청년임에도 머리는 희끗하고 표정은 굳어있다. 무표정의 전형이다. 주위 배경도 음침하다.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한다.

세 사진은 요조의 인생을 축약하고 있다. 흉하게 웃는 것은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서이고, 미남의 얼굴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며, 머리가 희끗해진 것은 사람과 세상, 세월에게 한 방 펀치를 먹었기 때문이다. 서로 연관되어 있기는 해도 직접적이고 가장 큰 치명타는 미남이라는 사실이다. 그 잘생긴 얼굴은 남자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결국 그의 인생을 망친 것은 그 자신의 멋진 얼굴이다.

<인간실격>은 작가의 삶이 담겨 있는 가슴 아픈 소설로 꼽힌다.

인생을 망친 열 가지 불행의 으뜸은 여자들

1980년대 초반, 이른바 제5공화국 시절에 군생활 할 때 간혹 엉뚱한 행동과 말로 선임들을 당황케 하는 신병이 있었다. 겉보기는 멀쩡한데 어떤 일이 주어지면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것이다. ‘정말로 바보이다’라는 것이 판명되면 이후의 군생활이 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고참이 한마디만 하면 바보 행동은 끝장난다.

“너 일부러 미친 짓 할래!”

닳고 닳은 고참은 신병의 얄팍한 꾀를 금세 간파하고 여지없이 깨버린다. 그 순간 이후부터 그는 정상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만약, 그 이후에도 바보처럼 행동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면 제대하는 날까지 바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조는 일찌감치 자신을 위장하는 광대가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배고픔의 느낌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알뜰함에 서글퍼지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요조는 그것들을 ‘열 가지 불행 덩어리’라 했다. 그 두려움과 불행들을 억누르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는 잘하지만 행동은 엉망진창인 장난꾸러기가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으나 어느 날 한 급우가 속삭였다.

“일부러 그랬지?”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리숙한 다케이치이다. 진짜 바보가 가짜 바보를 금세 간파해낸 것이다. 비밀을 들킨 요조는 다케이치에게 아부를 하고 집에까지 데려가 즐겁게 해준다. 다케이치는 요조의 서비스를 받으며 중요한 말을 한다.

“여자들이 네게 홀딱 반할 거야.”

요조는 심드렁했지만 그 말은 삶을 바꾸는 이정표가 되었다. 어렸을 때 자신을 희롱(범죄)한 하녀들이 처음이었고, 중학교 때 하숙집 자매들이 본격적으로 인생에 개입했다. 그녀들은 요조를 번갈아가며 집적거렸고 함께 가출하자고 유혹까지 한다. 요조는 “여자는 남자에 비해 더 많은 쾌락을 탐하고, 소화해낼 수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믿음이 요조를 비정상의 길로 이끈다.

진정한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하숙집 자매를 시작으로 여러 여자들이 요조 앞길에 나타난다. 그림을 그리는 호리키 마사오는 그 길에 기름을 붓는 6살 많은 선배이다. 두 사람은 늘 술을 마시고, 매춘부들과 신나는 밤을 지새운다. 술, 담배, 매춘부는 인간을 향한 공포심을 잊게 해주는 좋은 요소들이었다. 필연적으로 돈이 부족해지자 모든 물건을 전당포에 잡히면서 생활은 엉망이 되어간다. 카페 여급 쓰네코 역시 삶에 몸서리나도록 지친 여자이다. 의기투합한 둘은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자살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조는 살아남고 방탕한 삶은 계속된다.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러 여자가 나타나고, 호리키 마사오는 악인이 되었다가 은인이 되는 행동을 되풀이한다. 요조는 그림 재능을 살려 만화를 연재하는 무명 만화가가 되었으나 삶에 드리운 원초적 불행의 씨앗은 점점 자라나 삶 전체를 갉아먹는다.

내성적 성격, 술의 유혹, 절제심의 부족, 인간에 대한 공포, 여자들의 접근, 세상의 난해함, 거짓된 학문, 금전만능...을 요조는 이겨내지 못한다. “돈 끊어지면 인연도 끊어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도 있건만 끝내는 자신을 포기한다. 인간으로서 실격이기 때문이다.

1930년~4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세계로 나아가던 시대였다.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가 아시아에서 제일이었고 식민지도 여럿이었다. 식민지에서의 약탈과 수탈은 일본 경제를 부흥시켰고 서민들도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잘 살았다. 그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배경은 소설 속에 드러나지 않지만 경제적 부를 누리는 한 청년의 방탕한 삶과 죽음은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강에 겨운 미친 짓으로 보인다.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 ‘네’라고 말하지 마라

이 소설은 3부와 짧은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유년시절의 1부, 학창시절의 2부, 청년시절의 3부이다. 행복하고 낭만적인 순간도 있지만 자아를 잃어버리고 사람들 틈에서 자신을 위장하기 위한 난투극 가까운 행동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어렸을 때부터 요조는 단 한마디도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작성한 수기에서만은 27살의 나이로 진심을 밝힌다.

그 진심은 간단한다. 나는 ‘인간실격자’이다. 과연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교바시 술집의 마담은 요조의 몰락 이유를 명확히 짚어냈다.

다자이 오사무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허무적 몰락의 작가이다.Ⓒ김호경

“그 사람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아~ 얼마나 많은 아들들이 가난한 아버지, 엄격한 아버지, 방탕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던가! 그러나 아버지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여도 아버지를 뛰어넘어 성공하는 것이 최대의 복수이다. 그러나 우리의 요조는 술과 여자에 매몰돼 아까운 인생을 허비했다. 그 인생을 망친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니오’라고 말해야 했을 때 ‘네’라고 말한 소심함과 공포심에 있었다.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할지언정 ‘네’라는 대답만 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빛났을 것이다. 누구인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 더 알아두기

1.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1909년 출생해 1948년 6월 13일 투신자살로 39년의 생을 마감했다. <인간실격>(1948년) 외에 <사양>(斜陽) 역시 명작으로 꼽힌다. 그 천재성과 요절이 우리나라의 이상(李箱, 본명 金海卿)과 유사하다. 이상은 27세에 사망했으며, 소설 <날개>, 시 <오감도>가 필독 작품이다.

2. <라쇼몽>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음독자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엽총자살로 삶을 마쳤다.

3. [나]가 한 인간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은 여러 소설에서 사용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달과 6펜스>, <폭풍의 언덕> 등을 들 수 있다.

4. 청소년의 방랑, 몰락, 비행 등을 다룬 소설은 북미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 유럽에서는 <시계태엽오렌지>, 아시아에서는 <인간실격>이 대표적이다. 셋 모두 명작이다.

5. 현실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는 내용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총명하지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시골 소년 한스 기벤라트의 방황과 죽음을 보여준다. 반대되는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이다. 고아로 태어나 온갖 고행을 겪으면서도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6. 쥘 르라느(Jules Renard)의 <홍당무>(Poil de carotte)는 한 소년의 성장과 사랑, 자살 실행과 가족 사랑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로 청소년용으로 읽힌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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