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청년칼럼=하정훈]

요즘 JTBC 예능프로그램 < 뭉쳐야 찬다 >에 빠져있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는 반년이 넘은 것 같다. 우연히 한 회를 보게 됐는데, 첫회부터 모조리 찾아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구성이 좀 특이하다. 여자 연예인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남자끼리 예능하고 조기축구 하는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들을 엄청 몰입시킨다. 어쩌면 나를 포함, 많은 아재 시청자들은 그런 단순함의 재미가 무척 그리웠나보다. 어쩌다 FC가 게임에서 계속 져도 좋고, 점수 차가 많이 나도 좋고, 내가 전설로 생각했던 농구대통령 허재가 축구는 안하고 잔꾀 부리며 회식 노래만 부르는 회식요정이라도 좋다. 이 프로그램 전회분을 재시청 하면서 내가 왜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게 됐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을 정리해보니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다.

jtbc '뭉쳐야 찬다' 캡쳐 사진

첫 번째론, 난 이 프로그램의 단순한 구조가 좋다. 남자들끼리 레크레이션 하고 운동하고 달리고 정직하게 축구만 하는 그런 스포츠의 단순함이 좋다. 사는 건 단순하지가 않다. 우리는 복잡함 속에 산다. 삶은 예측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예기치 않은 상황에 우린 항상 수동적으로 내던져진다. 사는 건 무척 피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룰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고, 골을 많이 넣으면 이기고, 적게 넣으면 지는 그런 축구의 명료한 시스템이 나로 하여금 생각을 멈추게 하고 그저 시청하게 한다.

주말에 맥주 마시면서 < 뭉쳐야 찬다 > 3회를 몰아서 보았는데 생각도 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시간 참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전설들의 표정을 보면 이들은 정말로 프로그램을 순수하게 즐기는 듯 하다. 남자들끼리 유치한 레크레이션을 해도 웃음이 터지고 깔깔깔 행복해 한다. 정말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어릴 땐 그냥 친구들하고 유치한 놀이, 공차고 놀기만 해도 그 모든 게 인생의 의미가 되지 않나. 살다 보니 그런 남자들끼리만의 계산 없는 우정의 순간들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실리를 따지고, 관계에 대해 계산의 태도를 지니고 살게 되니 단순한 삶의 순간들, 우정의 순간들 같은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이들의 모습을 보고 대리적으로 우정의 순간을 함께 느낀다.

어쩌다 FC는 아직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의 첫승을 무척 기대하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잘하면 조금 섭섭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는 점이다. 이들의 실력이 나아지기도 바라지만 너무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이상한 응원? 솔직히 난 전설들이 축구를 못해서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성장을 바라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난 이들이 언젠가 1승을 하게 되면 정말로 큰 감동을 받을 것 같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난 이 프로그램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볼 것이다.  어쩌다 FC의 목표는 1승이겠지만, 난 그동안의 훈련과정과 지난 경기들 속에서 선수들의 아주 작은 성장들을 조금씩 목격했고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시청자로써 이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조금의 성장과 이들이 축구를 순수하게 즐기고 서로 잘 어울리는 순간들을 만들어가길 바랄 뿐이다. 삶에서 중요한 건 남들보다 아주 훌륭해지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일테니까.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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