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논객칼럼=김선구]

초등학교 2학년 때 5.16이 일어났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조회시간마다 혁명공약을 낭독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구절과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약속이다. 또  '축첩을 한 공무원들은 자리에서 쫒아낸다'하여 불안해하는 일부 공무원 이야기가 비록 어렸지만 들려오기도 했다. 그 후 지난 육십년 가까이 되는 기간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물론 눈에 보이는 변화도 나타났다. 몇 가지 피부에 와 닿는 사례를 들어본다.

동사무소나 구청 등에서 민원서류를 떼거나 민원업무를 처리할 때 흔히 급행료라 해서 돈을 건네면 업무를 빨리 처리해주던 관행이 사라지고 민원창구에서 친절하게 맞아주는 변화가 일어났다. 또 교통단속에 걸려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라'는 교통경찰에게 운전면허증과 함께 돈을 면허증 아래에 붙여주면 눈감아주었다는 경험담을 주위에서 흔히 듣기도 했고 동승자로서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픽사베이

국제 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이란 단체에서 1995년 이후 각 나라의 공공부문 청렴도( The Corruption Perception Index)를 측정해 매년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이후 55점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점의 작은 변화를 보이며 2018년 180개국 중 45위, G20 국가 중 12위에 머무른 상태다. 소위 선진국 중 우리보다 뒤에 처진 나라는 없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 등 12개 기관의 16가지 서베이 조사와 전문가 평가, 그리고 기업인 설문조사를 거쳐 작성되는데 청렴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블랙마켓의 크기와 활동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잉규제의 존재여부라 한다.

세제가 복잡할수록 후진이고 단순 명료할수록 선진이라는 단순한 결론을 오래전 세계적인 경제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복잡한 세제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세무공무원과의 거래'를 당연시 하던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가 투명한 사회를 향한 노력에서 보여준 입법상의 자취를 돌아볼 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금융실명제법이고 둘째는 약칭 김영란 법이다.

서슬 퍼렇게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던 혁명공약도 시간이 지나며 흐지부지됐듯이 금융실명제나 김영란 법도 그 위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렴한 사회는 단순히 법 제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말단 공무원만이 바뀌는 것으로 오지 않는다.

고위층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반칙과 부패가 만연한 구조에서 일부만 처벌하는 근거로 법이 이용되기도 해 표적수사라며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세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사람들은 까다로운 정치자금법 적용에서 벗어난 모금방법으로 출판기념회를 이용하는 게 이제는 너무 일반화되었다. 얼마나 잘 생각하고 준비해서 쓰고 출판하는지, 더 나아가 스스로 쓴 책인지도 궁금하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라고 단말기까지 출판회장에 갖다놓는 세심한 배려를 보인 국회의원 이야기도 있었다.책을 사가서 읽혀지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관행은 정치인이 만든 정치자금법을 스스로 우회하는 반칙임에 틀림없다.

논문도 표절이 문제되면 그 당시는 엄격한 기준이 없었던 시절이라 얼굴 두껍게 변명하는 장관 후보자들이 일반국민들 부패를 척결한다고 큰 소리치는 사회다.

작년 하반기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입시비리나 취업비리도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특권을 이용한 반칙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우리사회 지도층과 이를 정죄하는데 옳고 그름보다 당파적인 노선에 따라 결론을 달리하는 식자층이 진실을 외면하는 탓이다.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지도층이 변하지 않는한 우리나라 청렴도는 올라가기 어렵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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