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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김부복의 잡설]
김부복 | 승인 2020.01.13 10:12

[논객칼럼]  우리는 5만 원짜리 돈을 지갑에서 꺼낼 때마다 ‘신사임당’을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신사임당의 ‘이름’을 모른다.

‘사임당’은 당호(堂號)일 뿐이다. 당호는 성명 대신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가 신사임당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여성에게는 대체로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이름은 주로 ‘서울댁’이나 ‘김서방네’ 등으로 통했다.

신사임당의 생가인 오죽헌@픽사베이

100년도 더 전인 1911년, ‘매일신보’는 여성에게도 이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여자(女子) 명명(命名)의 필요’라는 사설이다.

“창기천류(娼妓賤流)는 혹 모화(某花), 모향(某香)이라 하는 염칭(艶稱)이 유(有)하되, 기타 부녀는 일체 무명씨(無名氏)로 자처하니 무명씨가 하등의 권리를 유하였으리오. 고로 기(其) 지식(知識)이 침선(針線)에 불과하며 기(其) 문견(聞見)이 정원(庭園)에 불출(不出)하여 일개 축물(畜物)과 여(如)한 즉, 조선 부녀계에 대하여 어찌 한심한 자가 아니리오.… 현금은 풍조가 일변하여 여자의 명명하는 자가 초초유지(稍稍有之)하더니 성남 북청군에는 부녀의 명명(命名) 신고가 답지하여… 일반 부녀는 호도명목(糊塗名目)을 거(祛)하고 각기 정당한 명자(名字)를 명(命)하여 정당한 권리를 향유(享有)하여 문명 방향으로 진향(進向)할지어다.”

우리는 이렇게 한 세기 전부터 여성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21세기인 오늘날, 우리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의 이름까지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몇 해 전, 현직 경찰관이 여고생에게 20만 원을 주고 성매매를 했다가 들통 난 사건이 있었다. 성매매를 한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경찰관은 ‘근무시간’에 그런 짓을 하고도 ‘미성년자’인지 몰랐다고 오리발이었다.

술 취한 여대생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추행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현직 경찰관도 있었다. 법원은 “현직 경찰관 신분을 가지고도 피해자를 유사 강간해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있었다. 두 경찰관에게는 ‘희한한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여성’을 성매매하고, 추행했다는 ‘공통점’이 아니다. 이름이 ‘모(某)’라는 ‘공통점’이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이 모두 ‘모’다. 또는, A나 B씨다. 남성 A씨가 화장실에서 여성 B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이름이 난데없이 A, B라는 알파벳으로 둔갑하고 있다. 언론 보도가 대충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모’가 되고 말았다.

이름만 ‘모’가 아니다. 얼굴도 ‘모’다. TV에 나오는 범인이나 용의자의 얼굴은 대부분 마스크로 가려지고 있다. 국민은 웬만해서는 흉악범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다. 어쩌다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공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인권 보호’ 때문에 가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만화 ‘데스노트(Death Note)’는 범죄자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면 ‘키라(킬러)’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데스노트’가 있다고 해도, 범죄자의 이름을 적을 재간이 ‘절대로’ 없다. 이름이 ‘모’이기 때문이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유경험자가 일으키는 ‘재범’이 많다고 한다. 한 번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은 또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못된 범인의 이름도 ‘모’다. 얼굴은 마스크로 거의 덮여 있다. 아마도 인권보호가 첫째, 경각심은 그 다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의 이름도 당초에는 ‘이씨 성의 50대 남성’이라고 발표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연쇄살인범도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려서 처단할 수가 없다.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스노트’는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를 고려,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알아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뒤늦게 이름이 발표된 연쇄살인범의 경우도 얼굴이 공개될 때까지는 ‘불사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이미 지났다고 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 교통사고 사망자의 ‘나이’를 확인하기 위해 밤을 꼴딱 새운 일이 몇 차례나 있었다. ‘한국 나이’인지, ‘만으로 따지는 서양 나이’인지 확인하려고 ‘숫자 2개’ 때문에 밤을 새운 것이다.

요즘 언론의 보도는 그런 것도 없다. 50대 아들이 70대 어머니를 폭행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자생활’도 많이 편해졌다.

김부복  news34567@nong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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