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  신년 초가 되면 종교와 상관없이 습관처럼 혹은 재미로 신년운세를 본다. 어떤 이유에서 신년운세를 보건 그 본질은 새해가 어떨까? 라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방법으로서의 점(점쟁이)에 대한 의존도는 성장배경과 경험이라는 후천적 요인과, 의지력과 의존성이라는 선천적 요인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점쟁이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그 흔한 사주 궁합 한번 안보고 사는 사람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점쟁이에 대한 의존도가 크면 클수록 신경 쓸 일과 걱정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점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역마살, 삼재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조상 묘 잘못 써서 나쁜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아는 게 병인 셈이다.

Ⓒ픽사베이

나의 어머니는 점을 자주 보는 편이셨다. 점을 본 날이면 항상 반복되는 뻔한 레파토리가 있다.

차조심, 불조심, 물조심 등 조심해야 할 것은 왜 그리도 많은지, 새 학년이 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 할 때면 항상 친구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부적을 지갑에 넣어 주셨다.

점쟁이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조상 묘를 잘못 썼다는 둥, 어린 나이에 횡사한 친인척이 있다는 둥 항상 상투적인 이유를 대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는 증명할 방법이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그런 핑계를 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금전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또한 점쟁이와 점쟁이를 찾는 이들간의 전형적인 관계설정 프로세스가 어떤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는 논리학에서 얘기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와 앞뒤가 바뀐 개념이다. 즉 일반화의 오류가 한 두 개 사례를 보고 전체를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이라면, 점을 보는 사람들은 그와는 반대다. 점쟁이가 지극히 일반적인 얘기를 해도 자신의 경험 속에서 점쟁이가 말한 것과 유사한 사례를 찾아낸다. 그리고 나서 점쟁이가 신통하게도 자신이 말하지도 않은, 자신과 가족의 과거사와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된다.

예를 들면 점쟁이가 “당신 아들은 친구 때문에 망해” 라고 말한다. 사춘기 자녀들이 잘못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친구이므로 나쁜 친구 사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엄마는 자녀의 친구들 중 공부를 못하거나 말썽을 자주 피우거나 생긴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등의 이유로 평소 못마땅해 하던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점쟁이가 말한 대로 그 친구 때문에 자기 자식이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은 자기 자식 때문에 친구가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안 한다.  자기 자식은 나쁜 친구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착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믿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이라는 책의 개정판에 새로 추가된  ‘내가 상황이다’ 파트에서 실험을 바탕으로 입증된 매우 의미 있는 주장을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한다”

점을 보러 온 사람이 점쟁이를 믿고 안 믿고는 첫 대면에서 기습적으로 던지는 “남편 옆에 여자가 보여“ 또는 “벌써 죽었어야 할 년이 용케 살아있네“ 등의 섬뜩한 한마디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마케팅에서 말하는 고객과 브랜드가 처음 만나는 짧은 순간에 그 브랜드에 관한 모든 인상이 결정된다는 주장을 담은 “The moment of Truth(진실의 순간)“처럼 말이다.

물론 점쟁이들은 자신의 말에 대한 권위와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항상 신을 빙자한 위압적인 말투를 즐겨 쓰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불상과 각종 소품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신이 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두를 타는 것과 같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교묘히 수집한 사전 정보를 활용해 용한 점쟁이라는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 한방을 날리는 기술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점쟁이에 대한 믿음을 만드는 것은 점을 보는 사람 자신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과도 맥을 같이한다.

둘째는 심리학 이론 중 획득에 의한 기쁨보다 손실에 의한 상실감이 더 크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나쁜 일로 인한 손실의 크기를 과장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하고 그 나쁜 일을 피하려는 행동을 교묘하게 유발시키는 것이다.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은 점쟁이의 수입과 직결된다.

그래야만 부적을 쓰건, 기도를 하건, 궂을 하건 돈 되는 일을 할 것 아닌가?

좋은 일이 생기는 것으로는 기껏해야 밥 한끼 얻어먹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살기 힘들고 어렵고 나쁜 일이 많아야만 돈 되는 고객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IMF, 금융위기 때 대량 실직으로 인해 호황을 맞은 대표적인 업종이 아웃도어와 점집이었다고 한다.                

이 글의 결론인 신년운세를 대하는 슬기로운 자세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나쁜 얘기를 들으면 걱정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나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바로 신년운세(점) 자체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신년운세를 꼭 봐야 한다면 공포감을 주 무기로 하는 점이나 나쁜 얘기가 나올만한 신년운세 대신, 새해를 맞아 덕담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정비결을 보는 것이다.

토정비결은 운세를 맞추기 위한 목적보다는 토정 이지함의 애민정신을 담아 후세에 기록된 운세서 형식의 일종의 덕담집이다. 쓰여진 의도 자체가 백성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바로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속담이 아닐까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는 것은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항상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기에 별로 좋을 것이 없다. 아래의 전래동화처럼 말이다.

걱정 많은 구두쇠 영감이 하루는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가는데 한 노스님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노새가 방귀를 세 번 끼면 당신은 죽는다”  처음에는 이 말을 무시했지만 노새가 두 번째 방귀를 끼고 나서부터 걱정이 몰려왔다. 그래서 영감은 방귀가 나오는 그 구멍을 차돌로 막았다.

노새가 또다시 방귀를 낄 것 같은 조짐을 보이자 걱정스러운 듯 가까이서 막아놓은 차돌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노새가 세 번째 방귀를 끼었고 영감은 날아오는 차돌에 얼굴을 맞아 즉사했다.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말이겠지만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오히려 일어나지 않을 나쁜 일을 일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그렇다면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은 과연 좋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현재에 집중하지도, 최선을 다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10년후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혹은 건물주 외동딸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는가?

역설적으로 그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사는 그 10년이 어쩌면 100년처럼 느껴질 만큼 지겹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말이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만이 미래를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은퇴생활도 마찬가지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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