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후퇴한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식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에 대한 노조의 반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 온 윤종원 행장(푸른 넥타이 착용 남성)과 노조원들ⓒ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에 대한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이 열흘을 훌쩍 넘겼습니다. 노조는 청와대와 여당이 2017년 맺은 정책 협약을 어기고 관료 출신 낙하산 행장을 내리꽂았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정부, 여당은 정당한 인사라고 항변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거들었습니다. 그는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 때 “윤종원 행장은 청와대 경제수석에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하는 등 충분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정부가 투자한 국책은행이자 정책금융기관이다. 정부가 인사권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공공기관인 기업은행은 정부가 행장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인사권이 대체 뭔가 하는 거죠. 시중은행 인사권은 부인하면서도 자기 인사권은 칼같이 챙기니까요.

2017~2018년 문재인 정부는 시중은행을 이 잡듯 뒤졌습니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이 신입 행원 채용에서 외부 청탁을 반영하는 비리를 저질렀다는 거였죠. 파장은 컸습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2015~2017년 신한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2015~2019년 하나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2015~2017년 재임) 등 거물들이 줄줄이 기소됐습니다.

시중은행들은 어떤 이득을 노리고 청탁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은행에 적합한 인재를 골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기업인 시중은행이 자율적인 채용 권한을 갖고 있다고도 했죠. 일리 있는 얘깁니다. 경제 상황과 조직 개편 등 다양한 변수로 필요 인력이 달라지는데, 무조건 필기점수에 맞춰 지원자를 선발하긴 어렵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시중은행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은행은 준공공기관 성격이 있으므로 일반 사기업처럼 채용 재량권을 행사할 순 없다는 논리였죠. 아울러 정부는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인 시중은행이 공정한 채용이라는 사회적 믿음을 깼다고도 했습니다.

믿음을 한번 따져 보죠. 시중은행이 취업준비생들의 믿음을 저버렸다면 기업은행 낙하산 행장은 어떨까요. 2017년 민주당은 분명 금융노조와 낙하산 인사 근절을 포함한 정책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낙하산을 안 보낼 거라는 믿음을 노조가 가질 만 합니다. 그 믿음은 배신으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시중은행 채용 비리나 기업은행 낙하산 행장 파견이나 믿음을 등진 건 도긴개긴인데 정부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시중은행은 멍석말이하고 기업은행에 대해선 인사권을 주장하며 뻗댑니다. 내로남불인 셈이죠.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기업은행장을 조직 내부 인사로 뽑았습니다. 낙하산을 보내려다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지만요. 정책금융기관이면서도 영업점 비중이 큰 기업은행의 특수성을 배려한 겁니다. 반면 진보·개혁을 지향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너무도 당당하게 낙하산이 무슨 문제냐고 언성을 높입니다. 국정 농단을 저지른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고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 혁명은 결국 관청 간판 바꾸기에 불과했던 것일까요. 씁쓸함만 느껴지는 요즘 세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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