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논객칼럼=안희진] 

I.

<입고, 먹고, 자고> 의식주는 인간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때문에 의식주 문제는 국가의 기본책무로써, 한 가정으로 볼 때도 가장의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러나 의식주는 그저 먹고, 입고, 잔다고 해서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국가나 사회가 책무를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는 삶의 질이 문제라는 것이다. 얼마나 인간답게 입고, 얼마나 인간답게 먹고, 얼마나 인간답게 자느냐의 문제는 바로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접근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어느 식당에도 시각장애인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점자 메뉴가 준비된 곳이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삶의 질을 웅변한다. 먹고 마시는 것이 본능적이고도 기본적인 삶의 모습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남들이 시킨 것을 무조건 먹어야 하고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식당 종업원에게 일일이 물어야만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인지. 이쯤되면 과연 ‘시각장애인 삶의 질....운운’ 할 수도 없을 테다. 궁극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II.

서로 도와서 하면 될 일이지, 메뉴쯤을 가지고 뭘 그렇게 발끈하느냐고 오히려 되 따질 사람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서로 돕는 걸 싫다는 것도 아니고 메뉴 문제를 가지고 물고 뜯자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문제 전반에 걸쳐 얼마나 무신경하고 무책임하냐는 것의 반증임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픽사베이

보도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 상주하거나 행동반경 내에 있는 곳에서조차 점자메뉴가 전무하다고 한다. 장애영역에 따라 관심영역이나 잇슈가 서로 다른 것을 새삼스럽게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장애 관련기관, 단체가 있는 근방에는 그 단체의 홍보나 계몽, 나아가 캠페인으로 충분히 관철시킬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점자메뉴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식당의 문제라기보다는 뜻있는 시민단체나 장애인단체의 노력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여겨진다.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점자메뉴 캠페인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III.

4.15 총선이 석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장애인계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안마련 차원의 간담회나 세미나를 열어 장애인계의 목소리를 각급의회와 정책당국에 전달하고 있다. 정당의 정강정책, 후보자들의 공약과 정책, 인물됨됨 등을 면밀히 살펴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선거에 장애인이 차별받거나 참정권을 제한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총선은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선거는 국민적 의무이자 권리요, 현대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의 핵심적 본질이다. 민주주의의 축제다. 때문에 단 한사람의 국민이라도 이같은 권리와 의무를 침해당하거나 제한당해 국민적 축제를 함께 즐기지 못한다면 감히 참정권을 보장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각종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우리는 선거당국의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과 기본적 이해의 부족으로 편의시설은 물론 선거홍보물 등이 미비하여 수많은 장애인들이 참정권을 포기했던 것을 사실로써 봐왔다. 때문에 장애인과 관련단체들은 장애인의 기본권확보 차원에서 투표소의 위치와 편의시설, 수화통역과 점자투표용지 등을 요구해었다.

IV.

이번에도 특히 시각과 청각장애인들의 참정권을 제한할 수 있는 선거공보 방식을 바꾸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이들이 참정권을 제한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참정권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다면 ‘무조건’ 이를 개선해야 할 텐데, 선거당국의 태도는 실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현행 시각장애인용 선거홍보물 점자 인쇄방식은 점자에 코팅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때문에 코팅이 쉽게 뭉개져 높이와 굵기, 간격 등이 표준규격에 맞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다. 장애인계는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를 위해 점자홍보물에 구멍을 뚫는 천공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거당국은 ‘선거공보물 자체가 임의규정이므로 유독 점자 선거홍보물 만을 강제규정으로 할 수 없다’면서 20대 총선 당시 천공방식의 투표용지와 공보물을 제작은 했으나, 제작하기 않은 후보도 있었다. 면수를 제한한 점자로는 내용을 제대로 알릴 수 없었던 ‘눈가리고 아웅’이요, ‘이쯤 했으면 조용하라’의 면피에 불과했을 뿐이다. 점자공보물을 놓고 납득하기 어려운 형평문제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장애인의 참정권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음을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요령부득의 강자논리적 형평을 내세워 결국은 참정권을 제한하면서 어찌 민주주의를 말하는가.

천공방식의 점자인쇄물로 시각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데, 임의규정은 굳건히 지키면서 민주주의의 토대인 참정권은 제한하겠다는 것인가.[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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