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준의 신드롬필름]

[청년칼럼=신영준]

술 냄새.

“잘 지내요?” 연말연시라는 든든한 명분을 등에 업고 보고 싶었던 이들에게 연락을 남긴다. “연말인데 우리 얼굴 한번 볼래요?” 꼭 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잠깐의 술 냄새가 함께하지 못한 일 년 혹 그 이상일지도 모를 미지의 시간들을 채워준다. 몇 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자주 보는 사람한테도 말 않던 고민이나 계획을 애기하게 된다거나, 뜻밖에도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연락이 만남으로 성사되는 것은 아니고 가끔은 아쉬움만을 남긴다.

‘당신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구나.’

그래, 괜찮다.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사랑스러운 이들을 생각하며 섭섭함을 툴툴 털어낸다.

신세계로부터...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한 달을 살다보면 혼자이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신경 써 차려입고 허리는 꼿꼿하게 펴고서 사람들로 북적대는 백화점으로 향한다.

Ⓒ픽사베이

동내 올리브영이나 다이소를 들렀어도 충분히 해결됐을 일이지만 내 앞에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지라도 나는 혼자임을, 혼자여도 괜찮음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가장 먼저 계획에 없던 서점에 들러 귀욤 뮈소의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구매했다. 평소에 잘 신지도 않는 컨버스 화도 괜히 만지작거리다가 구매했다. 종이가방 두 개를 덜렁덜렁 들고 인파속을 혁명적으로 탐험한다. 옷가게 한 바퀴, 리빙가전 한 바퀴, 식품관 한 바퀴. 100g에 육천원하는 샐러드와 한 줄에 육천원 하는 연어롤을 만원에 들고 와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넷플릭스에 들어가 ‘사랑의 불시착’을 튼다. 식사를 마치곤 콜드누아르 속 사연 많은 킬러처럼 깔끔한 뒤처리, 막힘없는 동선, 담담한 표정으로 미리 예매 해둔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be with me...

42년간의 대장정을 맺음 짓는 영화는 꽤나 볼만했지만, 전작들이 남긴 42년간의 레거시가...영화 속에서조차 대사에 레거시가 굉장히 많이 언급될 정도로...없었다면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지만 볼거리 많은 SF정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최종보스를 처리하는 순간에 “and I am... all jadi”는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어딘가 뜬금없었다. 마블 세계관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알아볼 생각도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이 핑거스냅하기 직전의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대사의 호흡과 전투의 막바지 최종보스를 처치하기 직전, 대사 전 최종보스가 주인공에게 던지는 말의 뉘앙스까지 비슷해서 마치 숨겨진 이스터에그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볼만하고 즐거운 영화였다.

여보세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괜히 구슬펐다. 혼자 잘 먹고 잘 노는 사람들을 동경했지만... 때로는 그냥 바라만 보는 게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한 달에 몇 번이고 만나는 친구. 혼자서 꽤나 있어 보이려 노력했지만 구슬펐던 내 하루가 둘이서 술 푸며 끝이 난다. 취한 걸까? 전에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해도, 천번 만번은 넘게 떠들어댄 이야기인데도 매번 할 때마다 마치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즐거워 깔깔거린다. 쌀쌀한 주말 저녁이 술 냄새를 타고 내일 아침으로 흘러간다. 후에 내 젊은 연가가 구슬펐다 할지라도 적어도 하루는 천년의 미소처럼 편안한 얼굴로 머리를 뉘었다 말할 수 있다.

신영준

언론정보학 전공.
영화, 경제, 사회 그리고 세상만물에 관심 많은 젊은이.
머리에 피는 말라도 가슴에 꿈은 마르지 않는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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