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2020년 3월, 14년 동안 땅속에 묻혀 개봉하기를 기다려왔던 야후! 타임캡슐이 드디어 개봉된다. 조너던 해리스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타임캡슐 프로젝트는 2006년 10월 10일부터 11월 8일까지 한 달 동안 2006년에 사람들이 했던 생각이나 느낌들과 2020년에 대한 기대상을 담았다.

2006년에 나는 뭐했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했고, 졸업 후 2008년부터 2019년 까지는 직장이라는 조직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2018년까지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어영부영 하다가 1년씩 지나갔고, 우물쭈물하다 1월 1일이 되기 일쑤였다. 직장을 때려치운 2019년은 좀 달랐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다.

2019년 새해계획 이루어졌나?

내 맘대로 산 2019년 1월에 썼던 새해계획을 한 번 되돌아보았다. 나는 2019년 1월에 돈 안 되는 일을 자그마치 세 가지나 하기로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다 보는 앞에 맹세했었다.

첫째, 종이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확실히 2019년 1월 15일에 종이 냄새 풀풀 나는 책을 낼 거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2019년 11월 20일에 정말 종이책을 냈다. 그리고 불길하게도 그 날 책을 내는 것이 돈은 안 되겠지만 상관없다고 썼는데, 아니나 다를까 돈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책 내는데 돈이 이래저래 많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딱 여덟 권 팔았다. 책 쓴다고 베트남까지 갔다 왔고, 6개월 정도 베트남 사람들 인터뷰 하느라 같이 쌀국수도 많이 먹고, 쌀국수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돈은 안 되겠다느니 하는 불길한 소리는 안해야겠다.

Ⓒ픽사베이

둘째로 사회적 사업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이 목표 역시 2019년 1월 15일 또, 배짱 좋게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지구인들 앞에서 맹세했다. 지구촌 인구가 다 같이 모여서 잘 사는 게 목표인 사업을 꾸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회사를 만들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진짜 2019년 8월 1일자로 ‘하좀하’ 라는 기업을 창업했다. ‘하좀하’는 ‘하고 싶은 일 좀 하자’의 약자다. 살다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조차 잊어 먹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하게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까지 월정액으로 15만원씩 받는다. 월 15만원이 아까워서라도 서둘러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획기적인 서비스다. 관심 있으면 지금 당장 연락주기 바란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까지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행복해지기로 했는데 정말 거짓말같이 아주 행복해졌다. 이건 뭐, 별거 없다. 남 신경 안 쓰고 매일 놀러 다니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

세 가지 큰 목표를 제외하고도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기,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하기, 근심, 걱정하기보다는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기, 책 많이 읽기, 뭐든지 쌓아놓고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버리고 나눠주기라는 세부목표도 세웠었다.

먼저 돈 안 되는 대표적인 일로 몇 달째 하루 종일 라오스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이 몇 번이나 뜯어 말렸다. 하루에 몇 십억씩 주무르다 지금 베이징에서 MBA 학위를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 하고 있는 친구는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그 친구는 최근 중국어 시험의 최고급 레벨인 신HSK6급에 합격했다. 라오스어는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시험도 없을뿐더러 전혀 쓸데없는 언어라고 충고해주었다.

내가 인구 700만의 최빈국인 라오스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발음이 굉장히 친절하게 들리고 버뺀냥 즉, 괜찮다, 라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는 라오스인의 생활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다. 나는 내 주위에 안 괜찮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동안 힘들게 살았다. 라오스인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를 낸 놈도, 사고를 당해 나자빠진 놈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버뺀냥, 즉 괜찮다고 한다는데 이정도면 매력적인 언어 아닌가?

둘째로, 근심 걱정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 하기는 ‘내일? 그게 뭐지?’라는 태도로 살고 있으니 성공이다.

책 많이 읽기는 과장 조금 보태서 정말 책장 넘기는 검지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고 생수 무한 리필이 가능한 도서관이 세상 천지에 깔려있는 나라에서 책 안 읽는다는 건 무례한 짓 아닌가?

물건 쌓아 놓고 근심하기보다 버리고 나눠주기는 지금 내가 가진 물건이 여행가방 두 개에 들어갈 정도가 되었으니 성공한 것 같다.

또, 타인과의 관계에 관련해서도 소소한 결심들을 했었다. 화내고 맞서기보다는 일단 피했다가 천천히 수긍하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시간 늘리기, 남에게 보이려고 살지 말고 자기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건방지게 가르치려 하지 말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기 등등을 공표했었다.

위 규칙들을 지키니 2019년에는 정말 화낸 횟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군대에서 일할 때 1주일 치 화내던 분량을 2019년에는 1년 동안 냈다. 또, 가진 게 없어지니 인간관계도 많이 정리되어 계산 안하고 내 이야기가 정말 재밌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만 남았다. 남에게 보이려고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살기는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예전처럼 몸에 명품을 5개 이상은 두르고 집을 나섰는데, 지금은 몸에서 발끝까지 걸친 것의 총합이 3만원 쯤 될까? 머리 모양이나 말투도 나에게만 부끄럽지 않게 하고 다닌다. 아주 자유롭다. 또 나보다 사회경험이 부족하거나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친구들에게 많이 배우는 한해였다. 친구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 그전까지의 나였다면 그런 사람들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말이 쉽지 이 목표들을 지키려고 노력만 한다면 확실히 행복해질 것이라고 썼는데, 정말 2019년 이제까지 살아 온 년들 중에 최고의 해였다. 계속 좋아진다. 신난다.

Ⓒ픽사베이

2020년의 계획

2020년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2019년 보다는 조금 더 나은 한해를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전혀 쓸데없을 것 같은 인구 700만 명의 최빈국 라오스의 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잘한다’ ‘잘 나간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워 질 것이다. 2020년도 2019년과 같이 전혀 잘 나갈 거 같지 않지만 내 나름대로 세계와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 나갈 것이다.

둘째로는 이제 남들보다 앞서가지 않을 것이다. 남들 앞에서 달리면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된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보이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남보다 앞서가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는 차를 끓이든 명상을 하든 내 나름의 의식을 만들어 생활의 속도를 낮출 예정이다. 나는 예전부터 서두르는 것이 문제였고, 에널리스트 일을 하면서 조직에 효율화, 경제화를 고민하다보니 내 생활 하나하나에도 효율화, 경제화를 넣고 있었다. 예를 들어 샤워를 할 때도 몸에 거품을 묻히고 물에 거품을 걷어내는 와중에 머리에 샴푸칠을 해 효율화를 실천했다. 머리를 행구는 와중에도 다른 몇 가지 행위를 추가해 최대한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샤워를 마쳤다.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그냥 내 기분이 좋아지는 순서대로, 기분이 내키는 대로 할 것며 생활의 속도도 늦출 생각이다.

네 번째는 지치면 무조건 쉴 것이다. 나는 일을 할 때 근무시간에는 최대한 서둘러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일에 도움이 되는 서류나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주말에는 밀린 일 준비나 공부를 했으며 자투리 시간을 짜내어 소설도 썼다. 이런 생활을 5년 넘게 하니 이상하게도 한숨과 불평이 늘어났다. 선택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선택한 후에 후회하고 빙글빙글 미래나 과거에 대한 걱정만 했다. 우울한 생각과 어두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는 독을 마신 것과 다름이 없어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거나 자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2020년에는 빈둥거리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더 늘릴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돈이라는 교환가치를 가진 물건에 대해 자유로워질 것이다. 지금 한 달에 6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진 것이 완전히 없어지니 역으로 돈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유로워졌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돈이라는 가치로 측정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냐, 싫어하냐로 선택할 것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면 커피 잔에서 식은 커피를 따라내야

식은 커피를 마시다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면 잔에 남은 식은 커피를 완전히 따라내야 한다. 식은 커피가 아깝다고 첨잔을 한다면 절대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가 없다. 2020년에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알량한 자부심이나 거들먹거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존심, 허세나 거짓을 완전히 비워내야겠다. 나는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2020에는 주위 사람들이나 내가 처한 상황을 비난하기보다는 나의 잘못부터 비워내야겠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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