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의 재계 인사이트]

[논객칼럼=권오용]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19일 귀국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이에 따라 21대 총선을 둘러싼 제 정파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지는 가운데 이기기 위한 합종연횡, 정책개발에도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오래된 지역감정, 이념논쟁에 더해 최근에는 빈부간, 성별, 노소간 등 다양한 요소가 진영논리에 개입해 참으로 예측이 어렵다. 그만큼 정책조합을 짜낼 수 없어 결국은 인물 대결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흠집 내기와 같은 네거티브 전략이 최후의 승부수로 떠오르곤 한다. 결국 선거가 통합의 기능을 하지 못해 정쟁과 분열의 단초가 되어 4년 내내 싸움판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역대 총선을 보면 정파 간 격렬한 싸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대체로 현명한 판단을 보여 왔다. 그리고 그 키(key)는 숨은 지지층, 이른바 샤이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이들은 보도나 언론,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지지후보나 정당을 밝히지 않다가 투표에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유권자를 가리킨다.

이런 침묵하는 지지층 때문에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심지어 출구조사마저도 개표 결과와 동떨어진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세를 뒤흔들고 대역전극을 이끈 것은 샤이 트럼프(Shy Trump)였다. 영국에서의 브렉시트(Brexit) 투표 또한 유로 탈퇴 반대가 많을 것 같았지만 결과는 찬성이었다.

Ⓒ픽사베이

우리나라도 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선거의 승패를 가름해왔다. 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는 민주화 세력에 표를 몰아줬고 정치가 오만과 독선으로 치달을 때는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해 줬다. 지난 2016년 당시 여당은 이 샤이 유권자를 무시했다.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할 확률이 80%”라고 예측한 것이 2016년 1월 말이었다. 반면 야당의 승리 가능성은 10%라고 했다. 거기에다 야당은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다가 분열됐다. 거대 여당과 '분리된 여러 야당'과의 싸움은 전문가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여당의 독주가 명약관화해 보였다.

그러나 석 달 후 투표 결과는 10%에 불과했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샤이 유권자의 힘이 극명히 발휘된 결과였다.

샤이 유권자를 읽고 그들의 바람을 정책과 공약에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은 필승한다. 그렇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지난해 말 국회는 ‘타다 금지법’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기존 택시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다. 택시는 똘똘 뭉쳐 시위를 했고 극단적 행동까지 했다. 그런데 한국의 택시에 불만을 가진 택시 이용객은 택시 업자나 기사보다 몇 배는 많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무거운 짐을 가진 승객이 뒷 트렁크에 짐을 끙끙대며 싣는데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 기사는 오직 한국에서만 보인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나라 택시 승객은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되나,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승차거부, 골라 태우기, 승객과의 논쟁 등 우리나라 택시행태에 대한 불만지수는 국민 사이에 국회의원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높다. 이런 불만을 알고 있다면 타다 금지법을 지지할 수가 없다. 택시 외의 대안이 없다면 몰라도 확실한 대안이 나왔는데 이를 금지한다면 샤이 표심은 어디로 가겠는가? 기득권 택시의 반발이 거셀수록 택시에 불만을 가진 수십 배의 표심이 똘똘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각 정당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의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생활에 내재된 문제다.

원격진료도 그렇다. 간단한 진찰 받고 약 사려고 몇 시간을 허비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동네 의원, 병원들의 반대가 무섭다지만 이들 뒤에 보이지 않는 환자들의 불편함은 선거 때면 유효한 득표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게으르다. 그리고 불편한 것은 싫어한다. 이것이 본능이다. 이 본능을 자극하면 기업은 돈을 번다. 정당은 표를 얻는다.

유치원 3법이 통과되자 본 회의장에서 이를 발의했던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사진이 보였다. 분명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은 유치원 원장들의 조직적 저항보다 이들 뒤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유치원 학부모들의 마음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유치원 학부모는 원장들보다 숫자가 훨씬 많다. 무리한 입법도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으니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를 반대한 의원은 표도 잃고 명분까지 빼앗긴 셈이다.

몇 개의 사례를 더 들어보자.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을 내수시장 확대로 얘기해 보자. 누구나 덜 일하고 더 받기를 원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위의 두 정책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수시장 확대를 덧씌우면 정책의 조합이 나올 수 있다.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해 헬스케어, 관광, 새벽배송,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처럼  참신하고 편리한 상품과 서비스는 새로운 내수 시장을 만들어 낸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인상을 수용하되 매력 있는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조합으로 활용하면 표와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규제 완화는 이럴 때 큰 의제로 동원될 수 있다. 결국 나왔다. 규제완화만을 의제로 잡은 규제개혁 비례당이 생겼다.

각 당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인재 영입이 한창이다. 그런데 사람은 보이는데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래와 연관된 의제는 찾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현 상황은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지역붕괴, 취업 절벽 등으로 사방이 꽉 막혀 있다. 하지만 양대 정당의 공약에는 “미래”라는 의제가 담겨 있지 않다.

민주당의 1호 공약은 ‘공짜’였다. ‘데이터 0원’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정의당은 만 20세 되는 청년들에게 3천만 원의 ‘출발자산’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미래와 연결된 의제가 하나 나올 수 있다. ‘내 연금은 받을 수 있을까’ 레토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의제화하면 연금생활자들은 샤이 유권자로 변한다.국민연금 수령자는 2018년 한 해만 477만 명이었다.  ‘나라의 곳간이 비어간다’. 또 다른 의제가 될 수 있다. 1,800만 납세자는 분노할 것이다.그렇게 제멋대로 쓰라고 내 돈을 준 게 아니기 때문이다.선거는 이들의 유일한 항쟁수단이라 생각이 모일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미래 전망이 훨씬 어두운 우리 사회는 오히려 철저하리만큼 미래에 대한 담론을 외면해 왔다. 정치판을 지배한 것은 무의미한 과거사 논란과 소모적 정쟁, 이성을 잃은 진영논리였다. 이것이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전략일 것이라고 각 당은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준비, 구조적 변화를 이끌 정책은 의제화하기에 따라서는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핵심적 요소라고 본다.

이기기 위한 조건은 진영과 인물이 아니라 정책과 '실현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샤이유권자들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누가 나의 미래를 위해 일하려 하고 도움이 되는 지 살펴보고 있다.

권오용

한국CCO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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