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연말, 연초가 되면 남녀노소 누구나 새해 목표를 세운다.

그것은 아마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지난 한 해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 그리고 올 한해는 지난해 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어쩌면 고해성사처럼 새해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난 한 해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음은 물론,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를 시작한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남성의 경우 새해 목표는 심플하다. 금주 아니면 금연, 한마디로 “끊기”다. 여성들은 더 심플하다. 한마디로 “빼기”다. 나이, 결혼여부, 직업과 상관없이 대부분 여성의 공통된 새해 목표는 다이어트다.

처음 며칠은 잘 지켜지는 듯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레스만 받고 포기하고 만다. 남자들의 경우 금주, 금연에 대한 스트레스로 술을 더 마시고,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그래도 여성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투자된 것이 기껏해야 금연 보조제, 초콜릿, 사탕 정도일 테니 말이다.

여성들은 살과의 전쟁에 나서며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 가족들의 목을 베어버린 계백장군처럼 다이어트에 성공할 경우 필요 없어질 옷들을 미리 없애버린다. 한발 더 나아가 탄금대 전투에서 왜적을 앞에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신립장군처럼 다이어트에 성공한, 슬림해진 몸에나 맞을 옷들을 미리 사서 옷장 안에 진을 친다. 어디 그뿐인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약과 식품은 물론,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운동기구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픽사베이

어느 화창한 휴일 소파에 먹을 것을 잔뜩 쌓아놓고 누워 평일에 못 본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우연히 TV 홈쇼핑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 음파운동기, 스쿼트 머신 등 소위 잘나가는 가정용운동기구 3총사를 12개월 할부로 질러버린다. 그녀의 계산은 이랬다.

“피트니스 연회비 88만원, 2년이면 약 180만원, 그 돈으로 가정용 운동기구를 사서 집에서 운동하면 2년만에 본전 뽑을 수 있다”

그래도 지출인지라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던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줄 새로운 계산법을 다시 생각해 낸다. 그것은 추가지출 없이 평소 쓰던 비용을 절약하고, 그렇게 절약된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사는, 매우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이다. 그녀 스스로도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하다. 그 대견한 생각은 이렇다.

“하루 커피 한잔 안 마시고(하루 5,000원, 한달 15만원, 1년이면 180만원) 운동기구를 모두 산다”

여기서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이 말은 홈쇼핑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단골 레파토리다. 이러한 달콤한 말에 매번 속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 말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 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모 침대 광고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홈쇼핑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구매욕구를 자극하고, 즉시 구매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최첨단 입체과학”이다. 한마디로 당신을 유혹하는 모든 방법을 알고 있는 “세일즈의 신”인 것이다. 쇼핑 호스트(호스티스)들이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들 모두가 치밀하게 계산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까지 1,000만개나 팔린: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니 믿을 수 있고 좋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아직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남들 다 쓰는데, 안 쓰는 너는 뒤쳐진 사람이라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여 구매에 동참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ㅇㅇ박사 실험을 통해 검증된, 또는 나사에서도 그 효과를 인정한: 권위 있는 사람과 기관의 명성을 이용해 메시지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고전적 방법이다. 고령자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조식품 등 건강관련 제품에 특히 효과가 있다. 미국의 존슨 영감도 이 약 먹고 병이 완치되었다는데 안 살 재간이 있겠는가?

-전 사이즈 매진,매진 임박: 소비자들은 방송이 끝나면 쉽게 잊기 때문에 가급적 방송 중에 사게 만들어야 한다.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매진되거나 방송이 끝나면 다시는 이 조건에 못 산다는 공갈협박(?)은 의외로 효과가 크다. 그러나 방송 끝났다고 물건 안 파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사실 방송이 끝나도 대부분 홈페이지나 앱에서 거의 같은 조건, 때로는 더 싸게도 살 수 있다.

-하루 커피 한잔 값으로: 1년 구독료 1만 2,000원으로 제시하는 경우 보다 한달 1,000원으로 제시할 때 구독률이 더 높다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단위를 나누어 표시가격을 낮춤으로써 가격 저항감을 줄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더해 추가 지출이 아닌, 기존의 소비를 줄여서 그 돈으로 구매한다는 식의 절약 프레임을 통해 추가 지출에 대한 부담이나 죄책감을 줄일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루 커피 한잔 값”이라는 메시지이며 구매율을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하루 커피값을 아껴 다른 것을 산다는 것은 말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매일 커피를 마시는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대부분 경험해 봤겠지만 이런 경우 십중팔구 물건도 사고 다시 커피도 마시게 된다. 하루 커피 한잔 안 마신다는 것은 결국 구매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속옷 광고에는 글래머 미녀가, 샴프 광고에는 긴 생머리의 금발 미녀가, 운동기구 광고에도 탄력있게 잘빠진 미녀가 등장하는 이유: 우선 눈길을 끌 수 있다. 소위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광고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Baby, Beast(동물), Beauty(미녀) 등 소위 말하는 3B를 즐겨 쓴다. 3B 모델을 활용하는 것은 단지 광고를 볼 확률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제품이나 브랜드의 사용효과를 모델들을 통해 시각화하고 형상화함으로써 기대감을 높여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픽사베이

홈쇼핑 얘기는 이쯤하고 여성들의 새해 목표인 다이어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의 경우 버린 옷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옷장을 열 때마다 입지도 못하는 옷들 보며 또 스트레스 받고, 옷걸이로 용도 변경된 운동기구를 보며 스트레스는 점점 더 쌓여간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다시 먹는 걸로 푼다. 이렇듯 과욕이 부른 대참사는 연례행사처럼 악순환된다.

다음 글에서는 왜 해마다 연초가 되면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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