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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의 유래[김부복의 고구려POWER 35]
김부복 | 승인 2020.01.23 08:14

[논객닷컴] 방랑시인 김삿갓이 주막집 주모를 유혹했다. 그 방법이 김삿갓다웠다. ‘7×8 자(字)’나 되는 시 한 수를 좔좔 써 내려간 것이다. 달필이었고 일필휘지였다. 그 가운데 뒷부분 ‘7×4’는 다음과 같았다.

“소군옥골호지토(昭君玉骨胡地土)/ 귀희화용마외진(貴姬花容馬嵬塵)/ 세간물리개여차(世間物理皆如此)/ 막석금소해여신(莫惜今宵解汝身)”

김삿갓이 시에 적은 ‘소군’은 이른바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하나인 한나라 때 궁녀 왕소군(王昭君)이다. ‘귀희’는 천하절색 양귀비(楊貴妃)다. ‘마외’는 양귀비가 죽은 곳의 지명이다.

따라서, 김삿갓의 시는 이랬다.

“왕소군의 옥 같은 뼈는 오랑캐 땅에서 흙이 되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에서 가루가 되었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모두 이러한데/ 오늘밤(!) 그대가 몸을 푼다고 아까워할 것은 없지 않소“

제아무리 천하의 미인이라고 해도 죽고 나면 흙이 되고, 가루가 될 몸이니 살아 있을 때 아낌없이 즐기자는 얘기였다. 노골적인 도발(?)이 아닐 수 없었다.

강원도 영월의 감삿갓문학관 조형물@논객닷컴

그 왕소군의 ‘과거사’를 뒤져보자.

한나라는 막강한 흉노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온갖 재물은 물론이고, 임금 원제(元帝)는 흉노에게 자신의 딸을 바쳐야 했다. 그렇다고 딸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적당한 궁녀를 골라서 딸이라고 속여서 넘겨주기로 했다.

원제는 모연수(毛延壽)라는 화가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도록 했었다. 초상화를 들여다보면서 궁녀들 중에서 후궁을 뽑기 위해서였다. 수천 명이나 되는 궁녀를 일일이 만나보고 선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궁으로 뽑히면 임금의 사랑을 받고 출세할 수 있었다. 궁녀들은 저마다 화가에게 뇌물을 바치며 초상화를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인 왕소군은 돈이 없었다. 뇌물을 바칠 수 없었다. 뇌물을 받지 못한 화가는 ‘열’을 받았다. 왕소군을 가장 못생긴 궁녀로 그려놓았다. 원제는 흉노에게 넘겨줄 궁녀를 고르기 위해 그 초상화를 뒤적였다. ‘추녀 왕소군’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못생긴 왕소군 따위는 보내줘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왕소군은 곱게 단장하고 임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원제는 그제야 화가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홧김에 화가의 목을 쳤지만 이미 늦었다. 왕소군은 흉노 땅으로 끌려가서 김삿갓의 시처럼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해야 했다.

왕소군은 아마도 돈이 절실했다. 돈만 있었다면 후궁으로 뽑혀 호강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돈이 웬수’였다. 돈이 없어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훗날 많은 시인이 왕소군을 노래했다.

이백(李白)은 ‘왕소군’이라는 시를 썼다.

“금일한궁인 명일호지첩(今日漢宮人 明日胡地妾·오늘까지는 한나라 궁녀였지만, 내일이면 오랑캐의 첩이로구나)”

백거이(白居易)도 ‘왕소군’이라는 시를 지었다.

“여금각사화도중(如今却似畵圖中·지금의 모습이 초상화 그대로가 되고 말았네)”

동방규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를 읊었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이 시에 ‘춘래불사춘’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많이 익숙한 말이다. 중국은 자기들의 힘이 약할 때는 이렇게 조공을 바치며 굴복하고 있었다. ‘조공외교’의 ‘원조’는 중국이었다.

전한(前漢) 때 관리 가의(賈誼∙BC 200~BC 168)는 ‘오이삼표(五餌三表)’라는 정책을 폈다.

➀ 그들의 생긴 모습을 사랑하고 그 재주를 좋아해주는 것은 인도적 도리다. ➁ 큰 지조로 믿음을 사는 것은 변함없는 의리다.➂ 애호함에 결과가 있고 이미 약속한 일을 꼭 지키면 저들은 오다가 열이 죽고 하나만 살더라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니, 이것이 ‘삼표(三表)’다.

➀ 좋은 옷과 수레를 내려 그들의 안목을 붕괴시키고, ➁ 맛있는 음식과 산해진미를 내어 그들의 입맛을 변질시키며, ➂ 아름다운 음악과 여인을 하사해 그들의 취향을 바꾸고, ➃ 좋은 집과 노비를 하사해 그들의 뱃속이 달라지게 하며, ➄ 투항하는 자는 불러서 총애하고 같이 즐기며 직접 술을 따르고 손수 음식을 먹여 그들의 마음이 뒤집어지도록 만든다. 이것이 ‘오이(五餌)’다.

반대로, 상대방이 자기들보다 약할 경우에는 대단한 끗발을 부렸다. 아예 ‘외교권’까지 쥐려고 했다. 청나라 말 원세개(袁世凱)의 ‘영약삼단(另約三端)’이 보여주고 있다. 조선이 외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지켜야 한다고 조선 정부에 요구한 3개 조항이다.

➀ 해외에 파견되는 조선의 사절은 먼저 현지의 중국공사관을 방문하여 그를 통해 주재국 외무성에 신임장을 제정할 것.➁ 조선의 사절은 모든 공식적∙사교적 외교 모임에서 중국 공사에게 상석을 양보할 것.➂ 조선의 외교 사절은 외교 문제를 처리할 때 현지의 중국 공사와 협의할 것.

이랬었다. 우리가 저들을 공격했던 고구려와 발해 때에는 감히 끗발을 내세울 수 없었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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