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청년칼럼=방제일]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게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는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한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나와 있는 구절과 같이 모든 사랑은 오해일 수 있다. 사랑뿐 아니다. ‘나’라는 우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느끼는 유대감 혹은 어떤 감정선은 모두 다 오해일지 모른다.

이런 오해가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백석과 자야의 일화다.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백석은 아름다운 시들을 남기고, 불꽃같이 살다 간 시인이다. 특히 백석의 남긴 가장 유명한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 시의 나타샤는 누구인가를 두고 백석의 삶 전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나타샤’는 자야, 김영한이다. 백석이 시를 잠시 접고 함흥에 와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동료 선생의 송별회 자리에서 백석과 김영한은 만난다. 손님과 기생의 관계, 이 자리에서 머뭇거리던 김영한에게 백석은 호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술에 취한 백석이 김영한의 손목을 잡으면서 한 고백, 이 한없이 가벼운 행동에 김영한의 마음이 동한다. 그 둘은 금세 둘만의 세계를 만든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란 애칭을 붙여준다. 자야란 당나라 이태백의 지은 시 <자야오가>에 나오는 여인을 말한다. (<자야오가>는 중국 동진 시절 변경의 전쟁터로 나간 남편을 내용을 담은 시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백석과 기생 자야, 이 두 사람의 ‘오해’는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며 좌절된다. 백석과 자야는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 나가려 노력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추후 백석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강제 결혼 이후 백석은 도망치기를 수 번 하며 자야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자야에게 만주로 같이 도피하자고 설득한다. 자야는 이를 거절한다. 결국 백석 혼자 만주로 떠나게 된다. 이후 남북 분단이 되고 그 둘은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했다.

길상사 전경

백석이 떠난 후 김영한은 성북동에 배밭골을 사들여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곳은 제3공화국 시절,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으로 탈바꿈한다.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김영한은 나이가 들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는 법정 스님을 직접 만나 대원각 7000여 평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법정 스님은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을 뜻을 표한다.

김영한은 포기하지 않고 법정 스님을 설득한다. 1995년 마침내 김영한의 청을 받아들인 법정 스님은 ‘길상사’라는 이름의 절을 짓는다. 항설에 따르면 김영한에게 한 기자가 1,000억 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김영한은 그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만큼 김영한은 백석을 사랑했다. 김영한은 추후 <내 사랑 백석>등의 책도 냈다.

이 일화까지만 본다면 이것은 눈물 없이는 볼 수도 없는, 가슴 한 편을 애리는 시인과 자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역시, 사랑은 오해다.

자야의 믿음처럼 백석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김영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 시 속의 나타샤는 자야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백석이 사랑했던 모든 여인, 나아가 그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나타샤라는 단어로 응축되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게 그렇고, 시란 게 그렇다.

백석에 대해 오랜 연구를 한 이들은 백석이 가장 사랑했던 나타샤로 ‘난’이라는 소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통영 충렬사 건너 쌈지공원에는 백석의 시비가 있다. 백석의 시비에는 ‘통영 2’라는 시가 적혀 있다. 백석은 이 ‘난’이라는 소녀 때문에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결국 ‘난’은 백석의 친구인 신현중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 상실감이 백석의 여러 시와 산문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 ‘나타샤’는 난이일 수도 있고, 혹 자야일 수도 있다. 혹은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공인 가상의 나타샤일 수도 있다. 이에 관한 오해와 진실은 오직 시를 쓴 당사자 백석만이 알 것이다.

김영한과 길상사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자야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대원각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간’ 박헌영의 비자금으로 지어졌다는 풍문이 있다. 박헌영은 ‘조선의 레닌’이라 불렸던 독립운동가다.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가인 그는 자신의 비자금으로 김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한다. 당시 박헌영에게 항일 독립운동에 써달라며 거액의 기부가 있었다 . 박헌영은 이 돈으로 대원각을 짓고 김영한에게 맡긴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추후 원경 스님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아들이다.

그 약조를 믿었기에 원경 스님은 대원각을 돌려받으면 그곳에 사찰을 세워 한국 전쟁 때 희생당한 혼령들을 달래고, 한쪽에는 시민학교를 세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자야는 이 약조를 깨고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했다. 법정 스님은 일정액 (정확히는 50억 원)을 자야가 흠모한 백석 기념사업에 기부하기로 한다.

양인심사 양인지(兩人心事 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는 뜻으로 한시 월하정인에 실려 있는 시구)라고 했던가. 결국 백석과 자야, 자야와 법정 스님, 그리고 박헌영과 원경 스님. 서로의 진실은 각자만이 알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오해’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시인과 자야의 ‘러브 스토리’로 끝났다면 좋을 이야기다. 모든 사랑은 오해란 말과 같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뒤에는 남모를 오해들이 뒤섞여 있다. ‘시’란 게 언어의 모호함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빗어내듯, 삶 또한 진실의 애매함으로 아름다운 사실로 포장되기도 한다.

 

 방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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